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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8일 (일)

[한국사] 역사관의 기형적 굴절

감방친구 조회 :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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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판단하는 우리 역사에 대한 공동체적 역사관의 굴절은 이렇습니다

1. 후기 신라와 고려 시대
ㅡ 신라가 삼한일통을 꾀하면서(사실 이는 삼한일통보다는 신라가 절명의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친 죽기살기의 몸부림의 결과입니다) 또 꾀한 후에 삼한의 정통을 주장하기 위해 신라 중심으로 역사관을 재편하였다는 정황이 서고 고구려ㆍ백제ㆍ가야의 역사가 많이 유실된 채 신라, 또는 중국왕조와의 관계사를 토대로 삼국사기에 재구성된 점이 결과적으로 이 시대 이후 역사관 및 영토관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2. 중국사서 편찬자의 춘추필법
ㅡ 이는 워낙 유명하고, 또 고질적인 악패입니다
ㅡ 그런데 신라(와 그 후손)가 삼한일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을 높이고 고ㆍ백을 낮추면서 중국의 중화주의의 왜곡된 역사서술과 역사관을 채택

3. 유교와 존화주의
ㅡ 삼국유사는 승려가 쓴 것임에도 존화주의가 은연 중에 깔려 있습니다 일본유학생이나 미국유학생 출신자들이 일본이나 미국을 편 들고 한국을 깔보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중국에서 유학하고 중국으로부터 불교와 유학 등을 수입하여 배운 신라와 고려 지식인들의 자의식 형성에 존화주의가 어떻게 지배적 영향력을 끼쳤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ㅡ 삼국사기는 애초에 구삼국사를 배제하고, 또 대외관계사를 중국사서의 교차 검증을 통해 그 사실을 정리한 것으로 유학자인 사서편찬자들의 존화주의가 반영돼 있음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3. 성리학 근본주의를 국교로 한 조선의 창업
ㅡ 가족부터 지역, 나라, 국제관계까지 장유유서에 따른 서열질서로 파악하고 중국을 업신여기는 것은 조선의 근본을 해치는 것이요 중국은 조선의 어버이며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이 인식 세뇌를 하고 이러한 지배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사서를 조선시대 전체에 걸쳐 수거하고 파기합니다
ㅡ 모화주의가 조선후기로 가면 극성을 부려서 아예 양반사대부들은 평소의 언어습관부터 한문투였다 합니다
ㅡ 박제가는 한어공용어론/한어국어론까지 주장합니다 일본 근대 지식인들이 영어를 국어로 삼자 한 것을 비웃을 처지가 못 되는 꼴이죠

4. 고려와 조선의 한반도 중심 사관
ㅡ 고려는 고구려 계승을 국시로 내건 나라이나 거란, 여진족에 부딪혀 고토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합니다
ㅡ 조선의 경우는 요동을 자의반타의반 내주고 또 모화질서를 지배이데올로기로 받들어 나라의 체계를 잡은 나라입니다
ㅡ 이러하다 보니 만주사와 만주의 지명을 한반도 안에 구겨넣는 짓을 합니다 기자무덤을 평양에 날조한 것, 태백산을 묘향산, 구월산 등으로 비정한 것 등이 대표적입니다

5. 일제의 식민사학

ㅡ 일제는 조선 식민지배를 정당화 하기 위해 역사를 날조ㆍ왜곡하고 일선동조론, 만선사관으로까지 발전을 시킵니다 또 이에 근대적 연구방법론까지 수반하여 우리 역사가 저들 의도에 의해, 또 저들 손에 의해 최초로 근대적으로 집대성됩니다
ㅡ 식민사학의 골자는 간단합니다 조선은 역대로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며 비주체적이며 열등하다는 것입니다
ㅡ 하다 못해 우리 역사와 문화사를 기술함에 있어서 지금도 쓰이는 "~에서 영향을 받았다", "~에서 전해졌다"가 다 이 빌어먹을 식민사학의 잔재입니다
ㅡ 또 조선시대의 한반도 중심 사관, 모화주의적 사관과 그 기술 태도 및 내용이 일제 식민사학의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장진동 17-11-23 11:27
한반도 중심사관은 조선 후기에 나타나 사관인데요 ㅋㅋㅋ
정욱 17-11-23 11:43
고려.조선 무두 남만주지역 지배했는데.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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