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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29일 (금)

[한국사] 진한(辰韓) 6부의 명칭 변경과 그 감각

감방친구 조회 : 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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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한 6부의 지명 변경 내용을 언어적 측면에서 고찰하여 당시대 사람들의 언어에 대한 감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이를 통하여  당시 언어상을 탐문 재구하여 타당성을 검토하겠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 이사금 조의 9 년 기사는 본래의 진한 6부의 명칭을 개정한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개국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국가의 체제와 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생각됩니다. 기존의 6부의 각 명칭을 다른 한자로 개정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이두식 표현이 불명확했거나 본음의 소리값이 불명확하여 달리 오해될 수 있는 점을 제거하고 명확성과 간결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이 고찰을 통하여 당시에 해당 우리말 어휘의 소리값과 이두로 적는 방식의 측면을 살펴서 고대 어휘와 이두표기법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신라 유리 이사금 9년(서기 32 년)에 기존의 6부의 명칭을 다음과 같이 개정합니다.

ㅡ 양산부(楊山部)는 양부(梁部)로
ㅡ 고허부(高墟部)는 사량부(沙梁部)로
ㅡ 대수부(大樹部)는 점량부(漸梁部), 혹은 모량부(牟梁部)로
ㅡ 간진부(干珍部)는 본피부(本彼部)로
ㅡ 가리부(加利部)는 한기부(漢祇部)로
ㅡ 명활부(明活部)는 습비부(習比部)로

1. 양산부(楊山部)를 양부(梁部)로

1) 양산(楊山)는 양(梁)과 등치됩니다

2) 양(梁)은 들보 양으로 땅을 가리킬 때는 '들', 물길을 가리킬 때는 '돌'이라 훈독합니다
ㅡ 들 :  노량진(鷺梁津)은 노들강변, 또는 노들나루를 표현한 것입니다. 나루가 있는 들, 혹은 물(ㄴㆍ)에 있는 들을  노량(鷺梁)으로 적은 것입니다
ㅡ 돌 :  명량(鳴梁)은 울돌을 표현한 것입니다. 물이 맞물려 소리를 내며 도는 물길을 울돌이라 하는 것을 익히 잘 아실 것입니다. 돌은 도랑, 물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돌 거(渠)로도 표기됩니다.
ㅡ 입말에서 모음이 불확정적인 것을 고려한다면  양(梁)은 'ㄷㆍㄹ(들, 달, 돌)'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ㅡ 딜(질그릇의 질), 달(산), 들, 돌 등은 모두 땅과 관계된 말이면서 달 (moon), 다락 등과 전의되거나 혼용되기 쉬운 말입니다

3) 양산(楊山)
ㅡ 먼저 산(山)은 뫼 (높다, 크다는 뜻에서), 올(mountain : 오르다, 높다는 뜻에서), 달(땅과 높다의 상호 전의에서)의 우리말이 있는데 고대 이두 표기의 사례에서는 달이 압도적입니다. 산을 뜻하는 달은 다락과 관련되고, 일어에 다께로 전해졌습니다.
ㅡ 양(楊)은 버들 양으로 여기에서는 벌이나 들/달로 모두 추출이 가능한데 벌로 추출 시 양산(楊山)은 벌달(비슷한 예 벌말)로 들/달로 추출시에 들들/들달/달들/달달로 해석이 됩니다. 가볍게 보자면 전자가 타당하나 양산(楊山)이 양(梁)으로 취합된 것을 보자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이 경우 양산(楊山)이 구릉지에 있었을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4) 추정결론
ㅡ 들을 뜻하는 첩어 양산(楊山)이 같은 뜻을 지닌 1음절 외자 양(梁)으로 취합돼 간결해졌습니다.

2. 고허부(高墟部)를 사량부(沙梁部)로

1) 고허(高墟)는 사량(沙梁)과 등치됩니다

2) 고허(高墟)
ㅡ 고(高)는 높다, 크다 등의 뜻을 지녔으며 이러한 뜻을 지닌 우리말은 ㅁㆍ계열(머리/마리/마립간/막리지/마루/맏/머슴의 머), ㄷㆍ계열(대가리/우뚝하다 우뚝/으뜸/두막루), ㄱㆍ계열(큰/한/하/가/간/건/걸/기/지/치)이 있습니다
ㅡ 허(墟)는 터 허입니다. 터는 따(땅), 들, 달과 동원어입니다. 입말에서는 모음이 불확정적이므로 ㅌㆍ/ㄷㆍ/ㄸㆍ로 볼 수 있습니다

3) 사량(沙梁)
ㅡ 사(沙)는 모래 사입니다. 모래의 옛말은 몰애입니다. 몰애의 애는 소리값의 유출을 막는 허사로 봐야 하며 어근이 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입말이므로 ㅁㆍㄹ 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ㅡ 량(梁)은 1의 2)로 대신합니다

4) 추정결론
ㅡ 고허(高墟)와 사량(沙梁)은 고(高)는 사(沙)와 허(高墟)는 량(梁)과 등치됨을 볼 수 있습니다
ㅡ 고(高)와 사(沙)는 말(마을)을 뜻하고
ㅡ 허(高墟)와 량(梁)은 들/달을 뜻함을 볼 수 있습니다


3. 대수부(大樹部)를 점량부(漸梁部), 혹은 모량부(牟梁部)로

1) 대수(大樹)와 점량(漸梁)과 모량(牟梁)은 삼자가 상호 등치됩니다

2) 대수(大樹)
ㅡ 대(大)는 크다는 뜻이며 여기에서 높다(majesty)는 뜻이 더해집니다 大의 우리말 상응어는 2의 2)에서 고(高)를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또한 대(大), 고(高), 상(上)은 뜻이 유사하여 서로 전의하며 대신하여 쓰이기도 합니다 대가리의 ㄷㆍㅣ와도 소리값이 같습니다
ㅡ 수(樹)는 나무 수입니다. 나무의 옛말은 나모입니다. 이 말의 어근은 ㄴㆍ에 있으며 판(板)을 뜻하는 우리말 널빤지의 널과 같은 말입니다. ㄴㆍ는 냇물을 뜻하면서 나루와 뜻이 통하고 땅을 뜻하는 널/너른/넓은/나라 등과 그 말뿌리의 소리값이 통합니다

3) 점량(漸梁)
ㅡ 점(漸)은 번지다, 스미다, 젖다, 점차의 뜻을 지녔습니다 이 가운데에 점차를 제하고는 젖다로 수렴이 가능합니다. 젖다의 어근 젖은 뎢을 거쳐 뎓 > 덛 > ㄷㆍ로 재구됩니다
ㅡ 량(梁)은 1의 2)로 대신합니다

4) 모량(牟梁)
ㅡ 모(牟)는 소가 입을 벌려 크게 우는 소리를 나타낸 글자입니다 크다, 투구, 보리 등의 뜻을 지녔습니다 보리의 소리값을 나타냈다고 봤을 때 벌(땅)로 조음이 가능하고 머리, 크다의 뜻으로 봤을 때에 3의 2) 大의 설명과 통하며 한자 자체의 소리값으로 봤을 때 역시 통함을 볼 수 있습니다
ㅡ 량(梁)은 1의 2)로 대신합니다

5) 추정결론

ㅡ 대(大) = 점(漸) = 모(牟)으로 점(漸)은 대(大)를 동음동의에 의하여 훈차하였고 모(牟)는 이음동의에 의하여 음차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ㅡ 수(樹)는 두 번의 교차를 통해 량(梁)과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는데 땅을 뜻하는 널/나라를 같은 뜻의 들/달로 교체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간진부(干珍部)를 본피부(本彼部)로

1) 간진(干珍)과 본피(本彼)는 등치됩니다

2) 간진(干珍)
ㅡ 간(干)은 방패, 막다, 근본의 뜻이 있습니다 또 강으로 발음될 때에는 새앙(생강), 한으로 발음될 때에는 한(사람)을 뜻합니다
ㅡ 진(珍)은 보배, 귀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귀한 것은 적다, 희귀하다는 뜻이며 적기 때문에 귀한 것이기도 합니다 진(珍)은 형성자로 뜻을 지닌 구슬 옥(玉)과 소리값을
맡는 숱 많고 검을 진(㐱)이 결합한 글자입니다 또  진(㐱)은 단순히 음가만 역할하는 것이 아니라 구슬/보배라는 의미에 적다/희귀하다는 뜻을 가첨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진(珍)의 중심의미는 진(㐱)이 역할하는 적다/귀하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본피(本彼)
ㅡ 본(本)은 근본, 뿌리라는 뜻입니다 이 한자는 땅을 뜻하는 벌, 뭍(일어의 모토)을 적는 데에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근본의 뜻인지 벌의 뜻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ㅡ 피(彼)는 저(that/there)라는 뜻입니다 소리값이 진(珍)과 통하는 (저ㅡ적다)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저 > 뎌 > ㄷㆍ로 재구됩니다 조선 > 됴선, 춘향전 > 춘향뎐 하는 것은 다들 아시는 것입니다

4) 추정결론
ㅡ 진(珍)과 피(彼)는 저 > 뎌 > ㄷㆍ로 재구되므로 들/달과 같이 땅을 뜻함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다른 예처럼 량(梁)으로 개정하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ㅡ 본(本)은 간(干)의 근본의 뜻을 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은 뿌리이므로 이 두 자 모두 벌을 훈차한 것으로 볼 여지는 남습니다

5. 가리부(加利部)를 한기부(漢祇部)로

ㅡ 분석하고 재구하기가 어려워 억지로 할 바에는 좀 더 탐구해 보자는 마음으로 남겨뒀습니다

6. 명활부(明活部)를 습비부(習比部)로

1) 명활(明活)과 습비(習比)는 등치됩니다

2) 명활(明活)
ㅡ 명(明)은 밝다입니다
ㅡ 활(活)은 살다, 살리다입니다 어근이 살/ㅅㆍㄹ인데요 위치상 땅을 뜻하는 말이 올 자리이니 살은 땅을 뜻함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입말에서 실/살/설/슬은 구분이 불명확합니다 또한 고대로 갈수록 모음은 불확정적입니다
ㅡ 저는 이 활(活)을 마을을 뜻하는 실에서 찾고자 합니다 마실을 마을과 같은 말로 보고 실과 을이 상호변동한 것으로 보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ㅡ '-실'의 독립형태로 마을을 뜻하는 지명들이 많이 있으며 마실은 말(마을)과 실(마을)의 이음동의어의 합성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ㅡ 활(活)을 실을 적은 표기로 보고자 하면 실을 이두로 표기한 다른 예를 찾아 교차검증을 해야 합니다
ㅡ 보통 밤실의 경우처럼 입말의 순우리말로 불리기도 하지만 잠실, 임실의 경우처럼 방 실, 열매 실로 음차한 사례가 있습니다
ㅡ 그밖에 신라 초기와 동시대의 사례를 찾고자 했을 때에 삼한 소국 가운데에 대석색국(大石索國), 소석색국(小石索國)이 떠올랐습니다
ㅡ 학계에서는 小石索의 경우 그 말을 '잔돌새'로 재구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小의 경우 현대음에서 적/작(적다와 작다는 어원이 같다)/잘을 추출해 '잔'으로 재구했는데 설사 뜻은 같을지라도 중세국어의 사례에서 익히 ㅈ 은 ㄷ으로 재구됨으로 잔이 될 수가 없습니다
ㅡ 또한 索은 그 위치상 땅/나라를 뜻하는 말(國은 나중에 붙은 것입니다)이 와야 하는데 '새'로 재구해 놓으면 땅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ㅡ 따라서 색(索)은 '새'로 재구하면 안 됩니다
ㅡ 색(索)은 그 음이 두 개입니다 뜻이 찾다일 때는 색, 노일 경우 삭입니다
ㅡ 노는 실을 꼰 줄을 이릅니다
ㅡ 索은 삭으로 읽힐 시에 줄, 실의 뜻도 지닙니다
ㅡ 줄이든 노든 모두 실입니다
ㅡ 하여 石索國은 석색국이 아니라 석삭국으로 읽어야 하고 索은 땅/마을을 뜻하는 '실'을 훈차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ㅡ 실제로 대석삭군은 지금의 임실군으로 위치 비정됩니다

3) 습비(習比)
ㅡ 습(習)은 배우다입니다. 배우다는 중세국어에서 ㅂㆍㅣㅎㆍ다로 나타납니다 또 어근인 배는 ㅂㆍㅣ > ㅂㆍㄹ이 로 재구되고 ㅣ가 간섭하기 전인 ㅂㆍㄹ 로 재구됩니다
ㅡ비(比)는 견주다, 나란하다의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비(泗沘)의 사례처럼 벌을 음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추정결론
ㅡ 명(明)과 습(習)은 ㅂㆍㄹ을 훈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ㅂㆍㄹ이 밝다의 ㅂㆍㄹ인지 땅을 뜻하는 ㅂㆍㄹ인지는 확실히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초 훈차자가 명(明)인 점에서 전자에 가능성의 무게를 더 둘 수 있다고 봅니다
ㅡ 활(活)이 비(比)로 바뀌면서 땅을 뜻하는 말이 '실'에서 '벌'로 바뀌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감방친구 17-11-22 14:21
A.

이에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들이 산골에 나뉘어 살면서 여섯 개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첫째는 알천(閼川)의 양산촌(楊山村)이라 하고, 둘째는 돌산(突山)의 고허촌(高墟村)이라 하고, 셋째는 취산(觜山)의 진지촌(珍支村)[혹은 간진촌(干珍村)이라고도 한다.]이라 하고, 넷째는 무산(茂山)의 대수촌(大樹村)이라 하고, 다섯째는 금산(金山)의 가리촌(加利村)이라 하고,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의 고야촌(高耶村)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진한(辰韓) 6부가 되었다.

ㅡ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 혁거세 거서간


9년(서기 32) 봄, 6부의 이름을 고치고 성을 하사하였다. 양산부(楊山部)는 양부(梁部)로 고쳤으며 성은 이(李)씨이고, 고허부(高墟部)는 사량부(沙梁部)로 고쳤으며 성은 최(崔)씨, 대수부(大樹部)는 점량부(漸梁部)[혹은 모량(牟梁)이라고도 한다.]로 고쳤으며 성은 손(孫)씨, 간진부(干珍部)는 본피부(本彼部)로 고쳤으며 성은 정(鄭)씨, 가리부(加利部)는 한기부(漢祇部)로 고쳤으며 성은 배(裴)씨, 명활부(明活部)는 습비부(習比部)로 고쳤으며 성은 설(薛)씨로 정하였다. 또한 관직에 다음과 같은 17등급을 두었다.

ㅡ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 이사금



B.


정인보(鄭寅普)는 소석색국을 순창의 적성현(磧城縣)으로, 대석색국을 임실의 구고현(九皐縣)으로 비정하였다. ‘소석색’은 ‘잔돌새’로 읽히며 잔돌이 ‘역(礫)’으로 백제 때 '□평현(坪縣)'이고 그 뒤 '□성현(城縣)'으로 변하였으니 현재 순창 적성현지(赤城縣址)라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백제의 역평현(礫坪縣)을 신라 때 적성현(赤城縣)으로 고쳐 순화군[현재 순창군]의 영현으로 하였다고 한다. 즉 소석색군은 순창군에 있던 삼한 시대의 소국으로 현재의 순창의 순창군 적성면 지역임이 확실하다 하겠다.

ㅡ 한민족문화대백과 소석색국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54부족국가 중 대석색국(大石索國)이 지금의 청웅면 구고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서 임실군이라 칭해 완산주(完山州)에 속하였다. 당시 돌평현(堗坪縣)은 백제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시되었으며, 청웅성지(靑雄城址)를 비롯한 많은 성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

ㅡ 한민족문화대백과 임실군
감방친구 17-11-22 14:25
본인의 모든 글은 분량에 관계 없이 핸드폰으로 작성됩니다.
글의 편집이 읽는 데에 불편을 드릴 수 있는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부디  양해해주세요.
저는 컴퓨터가 없습니다.

또한 위 글을 포함한 저의 일련의 연구는 제가 지닌 지식의 깜냥에서 원 사료만을 보고 자력으로 탐구한 것들이므로 여러 부족한 점이 있을 줄을 압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좋게 봐주시고 참고할 내용이나 부연하고 또 조언할 사실이 있으면 주저없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KilLoB 17-11-22 17:39
뭐 님 설명에 대해서 뭐라할만한 지식수준은없고.

다만... 잘보고 있습니다.

여기 강호의 숨은 고수들이 여럿 보이는듯. 대단한

기본 강단사학이란게... 설명을 제대로 못하는게 한둘이 아니죠. 아니면 뭔가 어거지스럽고.
지엽적인 개별사실도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뭔가 근본적인걸 설명을 못하죠.
태생의 한계로 인해  객관성을 담보하기가 어려운게 근본이기도 하고

이런 고수분들 글 보면 그게 앞뒤가 맞아들어가는게 보인다고.
감방친구 17-11-22 18:09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나이가 조금 젊다면 대학에 다시 들어가 역사를 전공하고 싶습니다
아스카라… 17-11-22 21:50
이런 고대사 연구글 하나하나가 너무 좋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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