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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29일 (금)

[한국사] 철령위 문제

감방친구 조회 :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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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역사 견문자이지 학자가 아니며
역사 견문자일지라도
역사 관련 즐겨찾기를 수백여 곳, 수천 페이지를 해놓고 있어도 감당을 못 하여 그때 그때의 기억과 재차 검색  및 자료 수색을 통하여 해당 사안, 해당 쟁점에 대하여 개인적 갈증을 다소 풀고 깊은 의문을 내일의 지도이자 희망으로 삼는 소시민이올시다

일단은 제가 가진 깜냥으로서 보자면

1. 강원도 철령은 고려 말의 철령이 아니다와 철령이 맞다의 주장이 맞서는 상황이고 전자는 소위 재야, 후자는 강단의 입장으로 현재의 통설입니다
ㅡ 전자의 입장은 고려사가 조선시대에 그 내용에 가감이 있다거나 이성계의 쿠테타를 옹호하고자 고쳐 쓴 의혹을 제기합니다. 이는 복기대 등의 학자진에 의해 일부 확인이 된 바가 있으나 그것이 철령을 비롯한 지리지명 전반 관련 내용을 고친 것이냐 하면 제가 알기로는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습니다
ㅡ 다음으로, 한반도의 철령과 요동의 철령에 있어서 특히 요동지역의 철령, 혹은 개원, 혹은 쌍성총관부 등 요동에 대한 위치ㆍ지리연원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면
ㅡ 고려사, 요서 지리지, 만주원류고, 성경지, 지금 제가 이름을 까먹은 명나라 당시의 지리지 (이게 성경지였나?)를 찾아서 비교ㆍ분석ㆍ고찰을 해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ㅡ 지금 복기대 교수팀이 압록강과 서경의 위치를 찾는 주요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2. 서경의 위치
ㅡ 이 역시 복기대 교수팀이 연구하는 바를 열심히 찾아 읽고 강의발표를 수차례 찾아 들으면서 보건데
ㅡ 요나라 당시까지는 서경이 요동에 있던 게 분명해 보입니다
ㅡ 그리고 압록강도 지금의 요하와 압록강, 이렇게 록자를 다른 한자를 쓰는 강이 두 개가 있었구요
ㅡ 그런데 이것이 금ㆍ원을 거치면서 현재의 압록강으로 축소돼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ㅡ 그러면 지금의 평양이 서경이 아니었으면 대체 그곳은 무엇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남죠
ㅡ 요나라 동경부 = 고구려 평양 = 왕검성
ㅡ 그리고 고려 서경은 그곳이거나 그 근처가 돼야 하거든요
ㅡ 그러면 지금까지 지금의 평양에서 발굴된 수 많은 고구려 고분, 유물, 왕성터는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생기죠
ㅡ 금ㆍ원을 거치며 고려 영토가 압록강 이남으로 축소가 되고(학계 통설은 강동6주가 역시 학계통설의 서안평, 즉 평안북도 서변으로 봅니다만) 그에 따라 여말선초에 지리고증을 하면서 요동에 있던 지명을 압록강 이남에 가져다 붙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이 될 뿐으로
ㅡ 이는 추정일 뿐 연구 과정으로 학계의 공인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3. 따라서 철령 문제는
ㅡ 명이 철령위를 설치하려 한 철령은 지금의 강원도 철령이 맞으며
ㅡ 요동의 철령은 명이 고려의 강한 반발에 밀려 요동에 철령위를 설치하며 생겨난 지명으로 봄이 타당하며
이에 이론을 재기하고자 한다면 다시 위에 제가 기술한 1항의 방법론으로 연구해 보심이 합당해 보입니다

4. 그리고 만약 그 철령이 요동의 철령이라 한다면
ㅡ 어찌하여 요동과 한반도 두 곳에 동일한 지명이 나타난 것이냐 하는 의문을 품을 것이며
ㅡ 명에 올린 표문에 동북9성의 일과 공험진 등의 일을 적었겠습니까?
ㅡ 요동이랑 공험진ㆍ동북9성이랑 위치도 방항도 다른데?

5. 또 요동의 철령이 아니라 한다면
다음의  우왕 14년 기사문ㅡ

서북면 도안무사(都按撫使) 최원지(崔元沚)40)가,
“요동도사(遼東都司)가 지휘(指揮) 두 명에게 군사 1천여 명을 딸려보내 강계부(江界府 : 지금의 자강도 강계시)에 와서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려 하고 있으며 명나라 황제는 진작 철령위에 진무(鎭撫) 등의 관직을 두어 이들이 모두 요동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요동에서 철령까지 일흔 개소에 참(站)을 설치했으며 각 참마다 백호(百戶)를 두었습니다.”
라는 보고를 올렸다.

ㅡ 에서 명나라가 요동에서 강원도 철령까지 70개의 참을 설치하고 각각 100호, 도합 7,000 호를 둘 때까지 방치하다가 다 설치하고 난 다음에 보고가 올라갔느냐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죠
ㅡ 요동부터 강원도 철령까지 참을 70 개나 두려먼 큰 사업인데다 분명 고려 땅을 지나, 고려 땅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게다가 고려 본진인 개성과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거리인데 고려의 저항이나 고려측의 정보 선취 없이 저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인 것이죠
ㅡ 요양이 당시 명나라의 요동도사가 거한, 요동 거점입니다

6. 복기대 등 소위 재야 학계는
ㅡ 성경지(성경통지), 요사 지리지, 조선왕조실록(특히 태조실록), 고려사 등에 근거하여
ㅡ 지금의 요동의 번시를 최초 철령위 위치로
ㅡ 지금의 요동의 철령시를 옮겨간 철령위 위치로 주장합니다
ㅡ 이는 5 항의 우왕 14 년 기사문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ㅡ 그러나 강원도 쯤의 철령이 일제에 의해 비정된 것이라 하더라도
ㅡ 4 항의 의문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ㅡ 명에 올린 표문에는 동북9성, 공험진 이야기를 하고 있죠

7. 그러나 표문에서 동북9성, 공험진을 거론하고 있더라도 철령위가 남만주와 북한 일부를 관장하고자 하는 행정치소임으로 동북9성ㆍ공험진을 거론할 수는 있습니다

이는 표문의 내용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ㅡㅡㅡ

이미 조상대로부터 영토가 획정되어 있는 바, 따져보면 철령(鐵嶺) 이북의 문주(文州 : 지금의 강원도 문천시)·고주(高州 : 지금의 함경남도 고원군)·화주(和州 : 지금의 함경남도 금야군)·정주(定州 : 지금의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함주(咸州 : 지금의 함경남도 함흥시)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公嶮鎭 : 지금의 함경남·북도에 있는 마운령과 마천령 사이 내지 함흥시 대덕리산성·상대리산성에 위치)에 이르는 지역은 계속해서 본국의 영토에 속해 왔습니다.

ㅡㅡㅡㅡ

ㅡ 즉 철령 이북부터 ~~~ 공험진까지는 요나라 이래로 고려의 영토였다는 주장입니다
ㅡ 즉 철령 이북에 공험진이 있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ㅡ 이 표문의 내용을 지리상에 대입해 보자면
ㅡ 요동의 번시부터 동만주 공험진(고구려 책성 근방)에 이르는 라인 이남이 고려영토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으로
ㅡ 위 5 항의 의문에 자연스럽게 부합함을 알 수 있습니다

8. 결론
(1)철령위 문제는 압록강 위치, 서경위치, 공험진 위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ㅡ 위 세 위치는 복기대 교수팀(인하대 고조선연구소와 객원 연구자들)에 의해 각각 압록ㆍ두만강 라인 북쪽에 위치함이 입증되고 있다
(2) 그러나 현재로서는 위 연구의 향방을 지켜보면서 3항의 통설의 지대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ㅡ 그러나 나 역시 이 말을 하면서도 통설을 그리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바이다

※ 거리의 문제

ㅡ 개성 ~ 철령 300 여 리
ㅡ 개성 ~ 평양 400 여 리
ㅡ 개성 ~ 번시 1,000 여 리
ㅡ 300 리라는 표현을 지근거리임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으로 봐야 하느냐의 문제가 생김

감방친구 17-10-29 22:22



명나라가 1388년 고려와의 접경지역에 설치한 지역 군사령부인 철령위(鐵嶺衛)의 위치가 현행 고교 국사교과서에 나와 있는 한반도의 원산이 아니라 중국 랴오닝(遼寧) 성 번시(本溪) 시 부근이라는 학설이 제기됐다. 이는 고려의 영토가 기존 압록강∼원산 이남이 아니라 최소한 북서쪽 경계는 한반도를 벗어난 만주지역이었음을 뜻한다.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 국학과 교수(상고사)는 17일 고조선학회(회장 서영대 인하대 교수) 정기학술대회에서 중국 역사서에서 발견한 자료를 근거로 논문 ‘철령위 위치에 대한 재검토’를 발표한다. 현행 국사교과서(89쪽)에는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가 원산에 설치한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영토를 회복한 것을 설명하면서 철령위도 그곳에 있었다고 표시하고 있다.

복 교수는 “대부분의 역사책에는 철령위 자리를 오늘날 함경도 원산만 일대로 설명하고 있는데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에 반발해 공격에 나선 이성계는 함경도가 아니라 중국 요동으로 향했다”며 “이 모순을 발견하고 중국 지리 역사서를 확인한 결과 철령위의 위치를 랴오닝 성 번시 시 부근으로 새로 설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明군사령부 ‘철령위’ 위치
원산만 아닌 랴오닝성 번시市”
日학자들 잘못된 고증대로
고려영토 한반도內로 인식

명나라가 1461년 편찬한 지리서인 명일통지(明一統志)에는 철령위에 대해 “도사성(都司城) 북 240리에 있다. 옛날에는 철령성이었고 지금의 철령위 치소(관청 위치) 동남 500리에 있었다. 고려와 경계를 접했다. 홍무 21년(1388년)에 철령위를 그곳에 설치했다가 26년에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복 교수가 확인했다.

도사성은 오늘날 랴오닝 성 랴오양(遼陽) 시이며 이곳에서 북쪽으로 240리 떨어진 톄링(鐵嶺) 시에 철령위가 있었다는 기록이다. 톄링 시의 이름은 철령의 중국어 발음으로 옛 지명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다. 아울러 처음 설치된 철령위는 이곳에서 동남쪽 50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기록으로 추정하면 이는 오늘날 번시 시 인근이라고 복 교수가 말했다. 복 교수는 청나라에서 발행한 중국 랴오닝 성 역사서인 ‘성경통지(盛京通志)’와 중국 기전체 사서 24사 중의 하나인 명사(明史)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음을 확인했다.

복 교수는 “지금까지는 일본학자들이 고증한 철령위 위치(원산) 등으로 인해 고려시대 국경선이 서쪽으로는 압록강을 넘지 못하고, 북쪽으로는 함경도 중부지역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고려사에 기록된 대로 고려시대 국경선은 한반도 안쪽이 아닌 북으로는 멀리 선춘령(두만강 북쪽으로 700리)이었고 서쪽으로는 중국 요동지역이었다는 것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00414/27576119/1#csidx90e61e5e4c9904e85325962c23958bf
감방친구 17-10-29 22:45
명나라의 요동지역 방어사령부, 요동도사(遼東都司)
ㅡ 강원대 남의현 교수
ㅡ 명나라 전문가이며 여말선초 지리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조선초의 북계는
ㅡ 애초 봉황성부터 공험진에 이르는 라인이었으나
ㅡ 여진족에 대한 조선의 통제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ㅡ 또 명나라의 여진족에 대한 통제력이 강화되면서
ㅡ 또 여진족의 이동, 이합집산이 심화되면서
ㅡ 오히려 압록강, 두만강 라인으로 축소됐음을 볼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
http://knup.kangwon.ac.kr/index.php?mp=2_4&BID=10533&cmd=view
인류제국 17-10-29 22:55
그냥 학자들이 알아서 하겠죠

여기서부터는 복잡해서 저는 이말만 적어놓겠습니다


저는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지 전문적이지는 않습니다
감방친구 17-10-29 22:57
ㅎㅎㅎ 저 역시 절반은 동감입니다

어느 분이 쪽지를 하셨길래
어찌된 일인지 저는 쪽지 쓰기가 안 되어서
또 내용도 많을 거 같고
아는 게 없으니 따져가며 적어야 하겠기에 적었습니다
비좀와라 17-10-30 00:49
본문의 내용 잘 보았습니다.

그럼 2차에 걸친 요동정벌이 각기 다른 지역을 공략 한 것 입니까? 아님 위화도 회군이 있었던 요동정벌은 사실 요동정벌이라고 부를수 없는 것 이네요.

그리고 당시 요동지역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 입니까? 지금의 랴오둥 지역이 아니라 만주지역을 일컫는 말인가요?

또 다른 의문도 생기는 것이 위 지도에 따르면 압록강 부근까지 명나라가 점유 했다고 나오는데 왜 임진왜란시에 조선이 도로가 덜 발달 되었다고 식량 운송을 못 한다고 했을 까요? 선조가 바로 압록강 부근에 있었고 군량을 실은 수송선도 산동성 부근까지 와 있는데 말이죠.

이밖에도 의문은 많지만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역사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으로 많이 복잡하네요.
감방친구 17-10-30 01:37
1ㅡ잘 모르겠습니다
2ㅡ는 제가 지금 고려사를 훓어보고 있고 예전에 이러저러한사서를 훓어봤던 깜냥으로 말씀드리자면
ㅡ 요ㆍ금ㆍ원ㆍ명 시기의 요동은
ㅡ 지금의 요하의 중상류, 요양이 있는 그 일대를 이르는 말로 보입니다
ㅡ 즉 오늘의 우리가 요동을 요동반도 전체로 이해하는데
ㅡ 저 시기의 요동은 요동반도 전체가 아니라 요양 일대를 이르는 말로 보입니다
ㅡ 그리고 이 요동의 뜻에서 그 요동이 행정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관리하거나 대처해야 하는 지역까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ㅡ 즉 저 시대의 요동은 요양일대, 즉 요의 동경요양부, 명의 요동도사가 있던 그 일대이며 이곳이 관할하거나 대처하는 지역은 주로 여진의 출몰지인 동쪽, 즉 남만주 일대입니다
3ㅡ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덧붙이자면
고려와 조선의 요동은
이 지역에 요ㆍ금ㆍ원ㆍ명의 행정치소가 있으므로
ㅡ 요양일대를 가리키기도 하면서
ㅡ 지금의 압록강 건너의 요동반도를 가리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ㅡ 즉 여말선초의 요동을 정벌한다 함은 요동반도가 아니라 요양일대를 정벌한다는 말이 됩니다
ㅡ 즉 요양~의무려산 일대
ㅡ 즉 요하 중상류를 사이에 둔 그 일대가 요동입니다
ㅡ 여말선초의 고려ㆍ조선의 땅은 지금의 요동반도 중남부, 혼하 이남이 맞는데 조선의 힘이 약하고 명이 위세를 부리고 여진족이 이리저리 활동하니 우리땅이라 내세우며 지키지 못 하고 그저 지금의 압록강을 방어선으로 삼아그 이북 (그러니까 봉황성 일대)의 땅을 중유지대로 버려둔 것이 결국에는 조선영토가 압록강 이남으로 굳어진 계기가 된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지도의 요동도사가 있는 곳(요양)을 중심으로 한 곳이 요동입니다

감방친구 17-10-30 01:55
또 봉황성~공험진 라인이 왜 중요하냐 하면
그 전에는 발해 땅이었고
여기가 요나라 이래로 고려의 땅이었고
공민왕이 되찾았고
명과의 외교전을 통해 명에게 공인 받은 조선의 땅인데
여진족이 무단으로, 혹은 허락을 받고 들어와서 함부로 세력을 키워 나라를 두 번이나 일으킨 (금, 후금) 지역입니다
ㅡ 미얀마 로힝야족 사태를 떠올려 보세요
그런데 또 이곳이 간도땅입니다

하여 간도문제와도 연관이 됩니다
물론 대대로 우리 사람들이 살았구요
감방친구 17-10-30 02:07
그리고 또 덧붙이자면
제가
ㅡ 요사
ㅡ 원사
ㅡ 거란국지
ㅡ 고려사
ㅡ 조선왕조실록(태조~세조)
등을 훓어본 깜냥으로 보더라도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소위 대륙고려니 대륙조선사니 하는 걸 주장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이겠죠
감방친구 17-10-30 02:13
또 덧붙이자면
어떤 이들은
북위 때부터 지금의 요하가 요하라 하고 그 지역이 요동이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연ㆍ진ㆍ한 때부터 그렇다 하는데

제가 아무리 살펴봐도 요나라 때까지는
지금의 요하는 압록강이었고
지금의 대릉하가 요수였으며
또 대릉하와 요하 사이에 있는 게 요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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