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철령위 문제
감방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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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역사 견문자이지 학자가 아니며
역사 견문자일지라도
역사 관련 즐겨찾기를 수백여 곳, 수천 페이지를 해놓고 있어도 감당을 못 하여 그때 그때의 기억과 재차 검색 및 자료 수색을 통하여 해당 사안, 해당 쟁점에 대하여 개인적 갈증을 다소 풀고 깊은 의문을 내일의 지도이자 희망으로 삼는 소시민이올시다
일단은 제가 가진 깜냥으로서 보자면
1. 강원도 철령은 고려 말의 철령이 아니다와 철령이 맞다의 주장이 맞서는 상황이고 전자는 소위 재야, 후자는 강단의 입장으로 현재의 통설입니다
ㅡ 전자의 입장은 고려사가 조선시대에 그 내용에 가감이 있다거나 이성계의 쿠테타를 옹호하고자 고쳐 쓴 의혹을 제기합니다. 이는 복기대 등의 학자진에 의해 일부 확인이 된 바가 있으나 그것이 철령을 비롯한 지리지명 전반 관련 내용을 고친 것이냐 하면 제가 알기로는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습니다
ㅡ 다음으로, 한반도의 철령과 요동의 철령에 있어서 특히 요동지역의 철령, 혹은 개원, 혹은 쌍성총관부 등 요동에 대한 위치ㆍ지리연원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면
ㅡ 고려사, 요서 지리지, 만주원류고, 성경지, 지금 제가 이름을 까먹은 명나라 당시의 지리지 (이게 성경지였나?)를 찾아서 비교ㆍ분석ㆍ고찰을 해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ㅡ 지금 복기대 교수팀이 압록강과 서경의 위치를 찾는 주요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2. 서경의 위치
ㅡ 이 역시 복기대 교수팀이 연구하는 바를 열심히 찾아 읽고 강의발표를 수차례 찾아 들으면서 보건데
ㅡ 요나라 당시까지는 서경이 요동에 있던 게 분명해 보입니다
ㅡ 그리고 압록강도 지금의 요하와 압록강, 이렇게 록자를 다른 한자를 쓰는 강이 두 개가 있었구요
ㅡ 그런데 이것이 금ㆍ원을 거치면서 현재의 압록강으로 축소돼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ㅡ 그러면 지금의 평양이 서경이 아니었으면 대체 그곳은 무엇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남죠
ㅡ 요나라 동경부 = 고구려 평양 = 왕검성
ㅡ 그리고 고려 서경은 그곳이거나 그 근처가 돼야 하거든요
ㅡ 그러면 지금까지 지금의 평양에서 발굴된 수 많은 고구려 고분, 유물, 왕성터는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생기죠
ㅡ 금ㆍ원을 거치며 고려 영토가 압록강 이남으로 축소가 되고(학계 통설은 강동6주가 역시 학계통설의 서안평, 즉 평안북도 서변으로 봅니다만) 그에 따라 여말선초에 지리고증을 하면서 요동에 있던 지명을 압록강 이남에 가져다 붙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이 될 뿐으로
ㅡ 이는 추정일 뿐 연구 과정으로 학계의 공인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3. 따라서 철령 문제는
ㅡ 명이 철령위를 설치하려 한 철령은 지금의 강원도 철령이 맞으며
ㅡ 요동의 철령은 명이 고려의 강한 반발에 밀려 요동에 철령위를 설치하며 생겨난 지명으로 봄이 타당하며
이에 이론을 재기하고자 한다면 다시 위에 제가 기술한 1항의 방법론으로 연구해 보심이 합당해 보입니다
4. 그리고 만약 그 철령이 요동의 철령이라 한다면
ㅡ 어찌하여 요동과 한반도 두 곳에 동일한 지명이 나타난 것이냐 하는 의문을 품을 것이며
ㅡ 명에 올린 표문에 동북9성의 일과 공험진 등의 일을 적었겠습니까?
ㅡ 요동이랑 공험진ㆍ동북9성이랑 위치도 방항도 다른데?
5. 또 요동의 철령이 아니라 한다면
다음의 우왕 14년 기사문ㅡ
서북면 도안무사(都按撫使) 최원지(崔元沚)40)가,
“요동도사(遼東都司)가 지휘(指揮) 두 명에게 군사 1천여 명을 딸려보내 강계부(江界府 : 지금의 자강도 강계시)에 와서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려 하고 있으며 명나라 황제는 진작 철령위에 진무(鎭撫) 등의 관직을 두어 이들이 모두 요동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요동에서 철령까지 일흔 개소에 참(站)을 설치했으며 각 참마다 백호(百戶)를 두었습니다.”
라는 보고를 올렸다.
ㅡ 에서 명나라가 요동에서 강원도 철령까지 70개의 참을 설치하고 각각 100호, 도합 7,000 호를 둘 때까지 방치하다가 다 설치하고 난 다음에 보고가 올라갔느냐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죠
ㅡ 요동부터 강원도 철령까지 참을 70 개나 두려먼 큰 사업인데다 분명 고려 땅을 지나, 고려 땅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게다가 고려 본진인 개성과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거리인데 고려의 저항이나 고려측의 정보 선취 없이 저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인 것이죠
ㅡ 요양이 당시 명나라의 요동도사가 거한, 요동 거점입니다
6. 복기대 등 소위 재야 학계는
ㅡ 성경지(성경통지), 요사 지리지, 조선왕조실록(특히 태조실록), 고려사 등에 근거하여
ㅡ 지금의 요동의 번시를 최초 철령위 위치로
ㅡ 지금의 요동의 철령시를 옮겨간 철령위 위치로 주장합니다
ㅡ 이는 5 항의 우왕 14 년 기사문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ㅡ 그러나 강원도 쯤의 철령이 일제에 의해 비정된 것이라 하더라도
ㅡ 4 항의 의문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ㅡ 명에 올린 표문에는 동북9성, 공험진 이야기를 하고 있죠
7. 그러나 표문에서 동북9성, 공험진을 거론하고 있더라도 철령위가 남만주와 북한 일부를 관장하고자 하는 행정치소임으로 동북9성ㆍ공험진을 거론할 수는 있습니다
이는 표문의 내용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ㅡㅡㅡ
이미 조상대로부터 영토가 획정되어 있는 바, 따져보면 철령(鐵嶺) 이북의 문주(文州 : 지금의 강원도 문천시)·고주(高州 : 지금의 함경남도 고원군)·화주(和州 : 지금의 함경남도 금야군)·정주(定州 : 지금의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함주(咸州 : 지금의 함경남도 함흥시)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公嶮鎭 : 지금의 함경남·북도에 있는 마운령과 마천령 사이 내지 함흥시 대덕리산성·상대리산성에 위치)에 이르는 지역은 계속해서 본국의 영토에 속해 왔습니다.
ㅡㅡㅡㅡ
ㅡ 즉 철령 이북부터 ~~~ 공험진까지는 요나라 이래로 고려의 영토였다는 주장입니다
ㅡ 즉 철령 이북에 공험진이 있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ㅡ 이 표문의 내용을 지리상에 대입해 보자면
ㅡ 요동의 번시부터 동만주 공험진(고구려 책성 근방)에 이르는 라인 이남이 고려영토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으로
ㅡ 위 5 항의 의문에 자연스럽게 부합함을 알 수 있습니다
8. 결론
(1)철령위 문제는 압록강 위치, 서경위치, 공험진 위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ㅡ 위 세 위치는 복기대 교수팀(인하대 고조선연구소와 객원 연구자들)에 의해 각각 압록ㆍ두만강 라인 북쪽에 위치함이 입증되고 있다
(2) 그러나 현재로서는 위 연구의 향방을 지켜보면서 3항의 통설의 지대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ㅡ 그러나 나 역시 이 말을 하면서도 통설을 그리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바이다
※ 거리의 문제
ㅡ 개성 ~ 철령 300 여 리
ㅡ 개성 ~ 평양 400 여 리
ㅡ 개성 ~ 번시 1,000 여 리
ㅡ 300 리라는 표현을 지근거리임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으로 봐야 하느냐의 문제가 생김
역사 견문자일지라도
역사 관련 즐겨찾기를 수백여 곳, 수천 페이지를 해놓고 있어도 감당을 못 하여 그때 그때의 기억과 재차 검색 및 자료 수색을 통하여 해당 사안, 해당 쟁점에 대하여 개인적 갈증을 다소 풀고 깊은 의문을 내일의 지도이자 희망으로 삼는 소시민이올시다
일단은 제가 가진 깜냥으로서 보자면
1. 강원도 철령은 고려 말의 철령이 아니다와 철령이 맞다의 주장이 맞서는 상황이고 전자는 소위 재야, 후자는 강단의 입장으로 현재의 통설입니다
ㅡ 전자의 입장은 고려사가 조선시대에 그 내용에 가감이 있다거나 이성계의 쿠테타를 옹호하고자 고쳐 쓴 의혹을 제기합니다. 이는 복기대 등의 학자진에 의해 일부 확인이 된 바가 있으나 그것이 철령을 비롯한 지리지명 전반 관련 내용을 고친 것이냐 하면 제가 알기로는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습니다
ㅡ 다음으로, 한반도의 철령과 요동의 철령에 있어서 특히 요동지역의 철령, 혹은 개원, 혹은 쌍성총관부 등 요동에 대한 위치ㆍ지리연원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면
ㅡ 고려사, 요서 지리지, 만주원류고, 성경지, 지금 제가 이름을 까먹은 명나라 당시의 지리지 (이게 성경지였나?)를 찾아서 비교ㆍ분석ㆍ고찰을 해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ㅡ 지금 복기대 교수팀이 압록강과 서경의 위치를 찾는 주요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2. 서경의 위치
ㅡ 이 역시 복기대 교수팀이 연구하는 바를 열심히 찾아 읽고 강의발표를 수차례 찾아 들으면서 보건데
ㅡ 요나라 당시까지는 서경이 요동에 있던 게 분명해 보입니다
ㅡ 그리고 압록강도 지금의 요하와 압록강, 이렇게 록자를 다른 한자를 쓰는 강이 두 개가 있었구요
ㅡ 그런데 이것이 금ㆍ원을 거치면서 현재의 압록강으로 축소돼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ㅡ 그러면 지금의 평양이 서경이 아니었으면 대체 그곳은 무엇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남죠
ㅡ 요나라 동경부 = 고구려 평양 = 왕검성
ㅡ 그리고 고려 서경은 그곳이거나 그 근처가 돼야 하거든요
ㅡ 그러면 지금까지 지금의 평양에서 발굴된 수 많은 고구려 고분, 유물, 왕성터는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생기죠
ㅡ 금ㆍ원을 거치며 고려 영토가 압록강 이남으로 축소가 되고(학계 통설은 강동6주가 역시 학계통설의 서안평, 즉 평안북도 서변으로 봅니다만) 그에 따라 여말선초에 지리고증을 하면서 요동에 있던 지명을 압록강 이남에 가져다 붙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이 될 뿐으로
ㅡ 이는 추정일 뿐 연구 과정으로 학계의 공인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3. 따라서 철령 문제는
ㅡ 명이 철령위를 설치하려 한 철령은 지금의 강원도 철령이 맞으며
ㅡ 요동의 철령은 명이 고려의 강한 반발에 밀려 요동에 철령위를 설치하며 생겨난 지명으로 봄이 타당하며
이에 이론을 재기하고자 한다면 다시 위에 제가 기술한 1항의 방법론으로 연구해 보심이 합당해 보입니다
4. 그리고 만약 그 철령이 요동의 철령이라 한다면
ㅡ 어찌하여 요동과 한반도 두 곳에 동일한 지명이 나타난 것이냐 하는 의문을 품을 것이며
ㅡ 명에 올린 표문에 동북9성의 일과 공험진 등의 일을 적었겠습니까?
ㅡ 요동이랑 공험진ㆍ동북9성이랑 위치도 방항도 다른데?
5. 또 요동의 철령이 아니라 한다면
다음의 우왕 14년 기사문ㅡ
서북면 도안무사(都按撫使) 최원지(崔元沚)40)가,
“요동도사(遼東都司)가 지휘(指揮) 두 명에게 군사 1천여 명을 딸려보내 강계부(江界府 : 지금의 자강도 강계시)에 와서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려 하고 있으며 명나라 황제는 진작 철령위에 진무(鎭撫) 등의 관직을 두어 이들이 모두 요동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요동에서 철령까지 일흔 개소에 참(站)을 설치했으며 각 참마다 백호(百戶)를 두었습니다.”
라는 보고를 올렸다.
ㅡ 에서 명나라가 요동에서 강원도 철령까지 70개의 참을 설치하고 각각 100호, 도합 7,000 호를 둘 때까지 방치하다가 다 설치하고 난 다음에 보고가 올라갔느냐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죠
ㅡ 요동부터 강원도 철령까지 참을 70 개나 두려먼 큰 사업인데다 분명 고려 땅을 지나, 고려 땅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게다가 고려 본진인 개성과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거리인데 고려의 저항이나 고려측의 정보 선취 없이 저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인 것이죠
ㅡ 요양이 당시 명나라의 요동도사가 거한, 요동 거점입니다
6. 복기대 등 소위 재야 학계는
ㅡ 성경지(성경통지), 요사 지리지, 조선왕조실록(특히 태조실록), 고려사 등에 근거하여
ㅡ 지금의 요동의 번시를 최초 철령위 위치로
ㅡ 지금의 요동의 철령시를 옮겨간 철령위 위치로 주장합니다
ㅡ 이는 5 항의 우왕 14 년 기사문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ㅡ 그러나 강원도 쯤의 철령이 일제에 의해 비정된 것이라 하더라도
ㅡ 4 항의 의문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ㅡ 명에 올린 표문에는 동북9성, 공험진 이야기를 하고 있죠
7. 그러나 표문에서 동북9성, 공험진을 거론하고 있더라도 철령위가 남만주와 북한 일부를 관장하고자 하는 행정치소임으로 동북9성ㆍ공험진을 거론할 수는 있습니다
이는 표문의 내용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ㅡㅡㅡ
이미 조상대로부터 영토가 획정되어 있는 바, 따져보면 철령(鐵嶺) 이북의 문주(文州 : 지금의 강원도 문천시)·고주(高州 : 지금의 함경남도 고원군)·화주(和州 : 지금의 함경남도 금야군)·정주(定州 : 지금의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함주(咸州 : 지금의 함경남도 함흥시)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公嶮鎭 : 지금의 함경남·북도에 있는 마운령과 마천령 사이 내지 함흥시 대덕리산성·상대리산성에 위치)에 이르는 지역은 계속해서 본국의 영토에 속해 왔습니다.
ㅡㅡㅡㅡ
ㅡ 즉 철령 이북부터 ~~~ 공험진까지는 요나라 이래로 고려의 영토였다는 주장입니다
ㅡ 즉 철령 이북에 공험진이 있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ㅡ 이 표문의 내용을 지리상에 대입해 보자면
ㅡ 요동의 번시부터 동만주 공험진(고구려 책성 근방)에 이르는 라인 이남이 고려영토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으로
ㅡ 위 5 항의 의문에 자연스럽게 부합함을 알 수 있습니다
8. 결론
(1)철령위 문제는 압록강 위치, 서경위치, 공험진 위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ㅡ 위 세 위치는 복기대 교수팀(인하대 고조선연구소와 객원 연구자들)에 의해 각각 압록ㆍ두만강 라인 북쪽에 위치함이 입증되고 있다
(2) 그러나 현재로서는 위 연구의 향방을 지켜보면서 3항의 통설의 지대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ㅡ 그러나 나 역시 이 말을 하면서도 통설을 그리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바이다
※ 거리의 문제
ㅡ 개성 ~ 철령 300 여 리
ㅡ 개성 ~ 평양 400 여 리
ㅡ 개성 ~ 번시 1,000 여 리
ㅡ 300 리라는 표현을 지근거리임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으로 봐야 하느냐의 문제가 생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