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발해 유적 발굴과 발해 영토 추정 변화
감방친구
조회 : 4,040
(1) 콕샤로프카성 유적
ㆍ내용
ㅡ 고구려계 성
ㅡ 왕성급 유적
ㅡ 쪽구들
ㅡ 고구려계 토기
ㆍ의의
ㅡ 고구려를 말갈의 나라라고 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주장을 격파
ㅡ 발해의 북단 영토선을 남연해주(홍개호)에 한정하려 한 러시아 주장 격파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317495
https://m.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m_news&sm=mtb_jum&query=%EB%B0%9C%ED%95%B4+%EC%BD%95%EC%83%A4%EB%A1%9C%ED%94%84%EC%B9%B4
(2) 트로이츠코예 유적
ㆍ내용
ㅡ 1천여 기의 고분군
ㅡ 고구려계 석실 고분
ㅡ 연대 8~10 세기
ㅡ 주변에 행정치소로 보이는 대규모 성터
ㆍ의의
ㅡ 발해의 영토가 기존의 통설보다 넓었고
ㅡ 단순 복속이 아니라 실제 통치했음을 보여줌
http://ph.kyongbuk.co.kr/news/photo/201702/983937_262243_0004.jpg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759567
(3) 신당서 방오천리 기사를 토대로 한
네이버 블로거 카오스님의 발해 영토 지도
ㅡ 국내 학계 통설에 따른 발해 영토 크기보다 작고 일본 통설과 거의 일치
ㅡ 수도를 기준으로 남(수도~남한계)+북(수도~북한계)+동(수도~동한계)+서 (수도~서한계)의 합 = 오천리(1리 0.56km 적용)
https://mblogthumb-phinf.pstatic.net/data18/2007/7/11/154/%B9%DF%C7%D8%B9%E65000%B8%AE-0-kms5824.jpg?type=w420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ms5824&logNo=80040117036&isFromSearchAddView=true
(4) 트로이츠코예 유적군을 토대로 한
가생이 유저 shrekandy님의 발해 영토 지도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4568
(5) 결론
ㅡ 신당서를 비롯한 중국 사서의 영토 크기 수치는 그대로 믿을 게 못 된다
ㅡ 이를 테면 부여를 이천리 영토라 했는데 실제로는 숙신을 복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해주까지 부여 영토로 지도를 그려야 하고
ㅡ 고구려 동천왕 때 1000리니 영양왕 때 동서 6000리니 하는 것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ㅡ 그리 따지면 몽골 동부 다리강가의 고구려 유적은 뭐가 되는가?
ㆍ내용
ㅡ 고구려계 성
ㅡ 왕성급 유적
ㅡ 쪽구들
ㅡ 고구려계 토기
ㆍ의의
ㅡ 고구려를 말갈의 나라라고 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주장을 격파
ㅡ 발해의 북단 영토선을 남연해주(홍개호)에 한정하려 한 러시아 주장 격파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317495
https://m.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m_news&sm=mtb_jum&query=%EB%B0%9C%ED%95%B4+%EC%BD%95%EC%83%A4%EB%A1%9C%ED%94%84%EC%B9%B4
(2) 트로이츠코예 유적
ㆍ내용
ㅡ 1천여 기의 고분군
ㅡ 고구려계 석실 고분
ㅡ 연대 8~10 세기
ㅡ 주변에 행정치소로 보이는 대규모 성터
ㆍ의의
ㅡ 발해의 영토가 기존의 통설보다 넓었고
ㅡ 단순 복속이 아니라 실제 통치했음을 보여줌
http://ph.kyongbuk.co.kr/news/photo/201702/983937_262243_0004.jpg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759567
(3) 신당서 방오천리 기사를 토대로 한
네이버 블로거 카오스님의 발해 영토 지도
ㅡ 국내 학계 통설에 따른 발해 영토 크기보다 작고 일본 통설과 거의 일치
ㅡ 수도를 기준으로 남(수도~남한계)+북(수도~북한계)+동(수도~동한계)+서 (수도~서한계)의 합 = 오천리(1리 0.56km 적용)
https://mblogthumb-phinf.pstatic.net/data18/2007/7/11/154/%B9%DF%C7%D8%B9%E65000%B8%AE-0-kms5824.jpg?type=w420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ms5824&logNo=80040117036&isFromSearchAddView=true
(4) 트로이츠코예 유적군을 토대로 한
가생이 유저 shrekandy님의 발해 영토 지도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4568
(5) 결론
ㅡ 신당서를 비롯한 중국 사서의 영토 크기 수치는 그대로 믿을 게 못 된다
ㅡ 이를 테면 부여를 이천리 영토라 했는데 실제로는 숙신을 복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해주까지 부여 영토로 지도를 그려야 하고
ㅡ 고구려 동천왕 때 1000리니 영양왕 때 동서 6000리니 하는 것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ㅡ 그리 따지면 몽골 동부 다리강가의 고구려 유적은 뭐가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