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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28일 (목)

[기타] 고구려의 동맹이던 돌궐, 어떻게 소아시아까지 흘러갔을까?

관심병자 조회 : 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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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과 터키의 수교 60주년을 맞아 지난 16일부터 한국과 터키 양국의 문화·고고학 전문가들이 10일간 터키 역사탐방에 나섰던 '아나톨리아 오디세이'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이 자리에서 나온 학술발표 중에는 한국과 터키 간 교류가 2000여년전부터 시작됐다는 내용도 나왔다.

일반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양국의 교류관계가 그렇게 오래됐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각각 아시아대륙 東쪽 끝에 위치한 한국과 西쪽 끝에 위치한 터키가 2000년 전부터 어떻게 교류했다는 것일까? 이러한 양국 교류 역사를 이해하려면 6세기 오늘날 몽골 일대에서 탄생했던 '突厥(돌궐) 제국'이란 나라에 대해 먼저 살펴봐야한다.

◆6세기 돌궐제국의 탄생, 고구려와 동맹 맺으며 시작된 양국관계

突厥(돌궐)이란 나라는 漢字로 오늘날의 터키를 세운 주 종족인 튀르크(Turk)를 音借(음차)한 단어다. 이 돌궐족들은 4세기 오늘날 몽골 일대의 강국이던 柔然(유연)이란 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6세기에 독립, 이후 柔然을 무너뜨리고 몽골과 중앙아시아 일대 강국이 됐다. 당대에는 高句麗와 동맹을 맺고 중국에 대항했으며 중국 隋(수)나라 때는 비밀리에 고구려와 공수동맹을 맺으려다 隋나라에 들켜 수 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高句麗를 침공하는 빌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돌궐족의 기원을 두고 여러 학설들이 존재하지만 현대 튀르크족 계열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중국 고대 漢나라 때 장성을 위협하던 흉노족이나 로마제국 붕괴에 기여한 훈(Hun)족에게서 찾는다. 이 흉노시대 역사까지 올라가면 우리나라 古朝鮮 때부터 돌궐족과 韓民族간의 교류가 시작됐다고 생각해볼 수 있으며 2000년전부터 교류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는 있다.

현재 남은 기록상에서 韓民族과 돌궐족간 직접적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돌궐제국이 설립된 6세기 중엽 이후부터의 일이다. 이 돌궐제국은 한때 엄청난 영역을 자랑했다. 주로 몽골 일대를 지배하던 東돌궐과 오늘날 중앙아시아 일대부터 카자흐스탄 일대까지 지배한 西돌궐로 나뉘는데 東西돌궐을 동시에 지배했던 타스파르 카간(他鉢可汗) 시대에는 중국의 위세를 압도할 정도였다.

그러나 7세기에 이르러 隋나라와 唐나라의 연이은 이간책으로 결국 東돌궐과 西돌궐은 분열하고 말았으며 결국 東돌궐은 서기 630년 唐나라의 명장이던 이정이 기습공격해 멸망했으며 西돌궐은 657년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에 멸망했다. 이후 일부 돌궐 왕족들이 다시 8세기에 후돌궐 제국을 세우기도 했으나 금방 멸망했으며 그들의 후예는 中央아시아 및 中東 일대로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11세기 셀주크 투르크 건국, 이슬람세계를 통일하기도


돌궐이 멸망한 후, 튀르크족 계열로서 西돌궐의 지배를 받던 부족 중 오우즈(Ohguz)란 부족이 있었는데, 이들이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세력을 키워 11세기 말에 이르러 이란과 中東 일대를 정복하고 이슬람세계를 통일한 적이 있었다. 이 제국의 이름을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라 칭한다.

셀주크 투르크 제국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들이 존재한다. 대체로 8세기 무렵 後돌궐제국이 무너진 이후 사방으로 흩어진 옛 튀르크족 일파들 중 셀주크란 이름의 지도자가 이끌던 부족이 中央아시아 일대를 떠돌다가 세운 나라로 인식돼있다. 이들은 中東 전역과 함께 오늘날 터키 지역인 小아시아 전역에 터를 잡고 살게 됐는데, 이들 중 일파는 오늘날 터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세우게 된다.

셀주크 투르크 제국은 11세기 이후 약 1세기 이상 中東 전역을 지배하며 西쪽에서 밀려오는 서구 십자군과도 맞서싸웠지만, 정작 東쪽에서 쳐들어온 침략자들에겐 대항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들을 무너뜨린 것은 유라시아대륙 일대를 처음으로 통일했던 세계제국, 몽골제국이었다.

◆14세기 오스만 투르크 건국, 오늘날 터키의 기반 마련


셀주크 투르크 제국이 몽골군에게 짓밟힌 이후, 상당수 튀르크족들은 전화를 피해 몽골군의 침략이 덜했던 小아시아 내륙 일대로 도망오게 됐는데 그중 일파로 오스만이란 이름의 족장이 이끌던 부족이 하나 있었다. 이 부족은 1299년 오스만 투르크라는 나라를 세웠으며 이것이 오늘날 현대 터키의 전신이 되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시작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유럽의 발칸半島와 中東 일대로 세력을 뻗치기 시작해 1453년에는 東로마제국의 首都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유럽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고 16세기를 지나면서 오늘날 中東 전역과 이집트, 리비아 및 北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하고 北으로는 헝가리 북부 일대까지 진출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를 두차례 포위공격했으나 실패해 유럽진출은 東유럽 일대로 끝났다.

이 3대륙에 걸친 대제국은 1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어졌지만 독일, 오스트리아와 함께 1차대전 당시 추축국으로 참전하는 바람에 전후 거의 모든 영토를 상실, 오늘날 터키 영토로 축소됐다. 이후 1922년 왕정이 붕괴되면서 터키공화국이 수립,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국전쟁 때 대규모 파병, '피를 나눈 형제'


이후 터키는 한국전쟁에서 UN군 파병규모 4위로 참전한 血盟(혈맹)국가로 우리나라와는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터키에서는 양국간 혈맹관계를 표현할 때, 피를 나눈 형제란 의미로 '칸 카르데쉬(kan kardesh)'란 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들도 '신앙의 수호자'라는 뜻인 가지(Gazi)칭호를 붙여 '코레 가지(Kore gazi)'라고 부른다고 한다.

양국 우호를 상징하는 건축물도 상호 보유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는 터키 首都 앙카라의 이름을 본딴 앙카라 공원이 존재하며 터키 首都 앙카라에는 한국공원(Kore park)이 있다. 2002년 韓日 월드컵 당시 3,4위전에서 양국 축구팀이 보여준 우호적 모습과 韓流 열풍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터키인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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