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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19일 (금)

[한국사] 고구려 영토에 대해서 질문 드려요

감방친구 조회 :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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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고등학교 때 국사를 정규과목으로 배운 세대인데요

중학교 시절에 국사를 배우면서
ㅡ 고구려의 최전성기라면서 영토는 왜 이렇게 작은가?
ㅡ 광개토대왕, 장수왕 시절의 지도에서는 왜 부여, 거란, 물갈 (물길) 등의 지역을 영토로 표시하지 않고 그저 화살표로만 제시하는가?

등이 의문이었습니다


ㅡ 고구려의 영토를 왜 직접지배 영토와 간접지배 영토로 구분하는가?
ㅡ 고구려는 간접과 직접을 구분하면서 왜 여진족을 직접지배하지도 못한 명나라 영토는 아무런 구분없이 연해주까지 표시하는가?
ㅡ 요나라는 발해를 멸망시킨 다음에 동요국을 그곳에 세우지만 만주와 연해주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여 발해부흥운동으로 수많은 국가들이 세워졌고 또 여진족이 발흥하여 대척하였으며 만주와 연해주는 그 땅크기에 비하여, 요가 발해인을 요동으로 사민한 이후로는 거의 텅텅 비다싶이 했는데 씨부랄 이런 것은 하나도 안 따지고 왜 연해주까지 요나라 영토로 그리는가?

ㅡ 흉노니 유연이니 돌궐이니 하는 나라는 좌우당간 땅 크기를 좆나게 크게 그려요. 아니 국사학계가 맨날 주장하는 게 땅만 크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면서 왜 다른 역사주체들 땅 크기는 그렇게 좆나게 크게 그립니까? 갸네가 거기를 모두 다 직접지배했습니까?

ㅡ 로마도 직접지배와 간접지배(속주) 영토가 있었는데 씨부랄 왜 로마지도는 직접지배와 간접지배를 구분하지 않고 고구려만 그 지랄인 것입니까?

ㅡ 부여가 숙신(읍루)을 지배하여 세금을 거두었는데 왜 부여와 숙신을 따로 구분합니까? 엄연하게 부여 영토 내에 숙신을 표시해야죠

ㅡ 고구려가 부여도 동부여도 읍루(물길)도 다 흡수했는데 왜 지랄하고 간접과 직접을 나눠요?

인류제국 17-06-01 08:04
그렇게 안하면 주류사학계들 밥그릇이 날라가버려서요 그냥 중국 일본을 위한 사학계들이죠
꿈꾸는자 17-06-01 08:10
조선총독부산하에서 우리민족의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하는데 앞장섰던 조선사편수회출신 이병도와 그친족.제자들이 여전히 우리나라 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죠..
그들은 해방이후 지금까지 국사편찬위원회.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박물관과 서울대국사학계까지 전부 장악하고 있다는..
꿈꾸는자 17-06-01 08:17
그들은 고조선을 신화로 만들고 발해사도 인정하지않죠..그래서 발해와 신라가 공존했던 남북국시대라 하지않고 통일신라시대로 고집하고있고 기회가있을때마다  발해사를 한국사에서  빼려고  하죠..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다고 만든넘들도  이넘들이죠..
강단사학자들..동의어로는 친일매국노들..
꿈꾸는자 17-06-01 08:27
다른기마민족들의 영토는 직접지배하고 있던  간접지배하고 있던 모든걸 인정하고 엄청크게 그리고 고조선.고구려.발해등 우리역사지도는 무조건 부인할수없는 성터유적등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것도 요하동쪽만 인정하고 요서나 연해주등은  다른지역에서  고구려성등이 나오고 고분에서 고구려의  지배영역이 기록되도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는..아주 미친것들이라는~
설설설설… 17-06-01 12:44
평양일대에서 발견되는 기원전1세기경의 낙랑유적들은 그러면 왜 인정안함??

님이야말로 보고싶은것만 볼려는거 아님?

민족사관으로 유명한 북한사학계도 평양일대에서 발견되는 낙랑유적들을 은폐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실적에 기제하는건 북한도 한사군 일대가 한반도에 있었다는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실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는걸 계속해서 역설하고 있는거임.
그래서 평양일대에서 발견되어 목간에 기록되어있는 낙랑 인구 통계나 여러 기록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고있음.

한사군은 한반도내에 있었음. 우리가 해야할건 이 한사군이라는 기관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기관이 절대 아니다라는걸 연구를 통해서 해명하는게 우선인거임.
Marauder 17-06-01 13:08
동아게 꾸준히 하다보면 알게되는데 낙랑군과 낙랑국은 구별되더군요. 물론 왜 구분해야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반대로 두개가 같다고 제시한사람도 딱히 없었어서요. 그리고 그 유물들이 낙랑군 것이라는 증거자체가 있었나요? 일제시대 유물이 조작되었다는 글은 몇번 봤습니다만...(역시 사실인지는 잘...)
흑요석 17-06-01 13:16
일제가 무슨 시골 깡촌도 아니고 서울 다음가던 도시인 평양에 있는

수천수만 개의 유물들을 모조리 조작했다?;;;;

저도 개인적으론 한사군재한반도설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물이 나와도 너무 많이 나와서요.

몇 천 년 전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던 게 그렇게 가슴 아픈 일인가 싶습니다.

어차피 나머지는 모조리 토착 세력에 흡수되어 사라져 버렸고 낙랑군만 계속 유지됐으나

이를 통해 문화도 교류하고 오히려 좋은 점도 많았는데요.
Marauder 17-06-01 13:58
제가 확실히 파고들지 않아서 모르는걸수도 있지만 논리적으로 모든것을 조작할 필요성은 없습니다. 흑요석님을 박사모로 조작하려고 생각했을때 흑요석님의 모든 글을 조작할 필요성은 없죠. 단지 박사모의 이름을 흑요석이라고 조작하면 단하나의 조작으로 모든게 끝이납니다. 제가 말하는것은 그러한 것인데
1. (제가 확인은안해봤지만) 조작은 있었다고 주장하고 그러한 글이 꾸준히 올라옴
2.(낙랑국과 낙랑군이 왜 분리되어야하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역사책에서 분리하여 본다고 하니...) 두개를 분리해서 본다면 증거가되지않는다. 실재로 양양이라는 지명은 중국동부에도 한국 동부에도 존재....
3. 중국 양식이란게 그땅이 중국것이 된다는 명확한 증거가 되지않는다.
제가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서 아직 어느 부분도 해결된게 없군요. 물론 정황증거란게있긴 하지만, 정황증거로써는 결국 사료를 무시할 수 없게되구요.
비좀와라 17-06-01 14:06
한사군의 재 한반도 설은 기록과는 반대 되는 내용입니다.

기록과 반대되는 내용을 증명 할려면 유물이나 유적의 주인이 누군인지 확인이 되는 것이 있어야 한단 말이죠. 그런 내용 없으면 인정 안됩니다.

아무리 많은 유물 유적이 많으면 뭐 합니까? 그 유물과 유적이 누구의 것인지 증명이 안되는데. 지금 한국에 많은 미국의 화폐가 있는데 후일 시간이 흘러서 후손들이 한국에 미국 화폐가 많으니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라 주장하면 그게 맞다고 봐야 합니까?

사용자나 소유자가 누구 였는지 역사 기록상의 인물이 나와야 인정이 된단 말입니다.
Marauder 17-06-01 14:10
비좀와라/ 제가알기론 낙랑예관과 관직명을 기술한 목간도있긴하니까요. 그런데 반대로 고구려 또한 유주자사의 무덤이 있는걸로 아는데... 그것도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고있죠.
Marauder 17-06-01 14:03
그리고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게 가슴아프다... 이것참 논리적으로 모순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논리로 보면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당한것도 같은 맥락이거든요.
물론 저는 사실을 볼때 감정적으로 보진않습니다. 그냥 사실 관계랑 논리관계로 볼 뿐이죠...
가슴아파도 일제강점기가 있던건 사실이고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한국 고대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축소된건 봤어도 넓혀진건 못봤습니다.(물론 소수의견은 언제나 있었죠)
 그런데 실제 역사 흐름을 봤을때 과거에는 항상 축소된것이 계속 넓어지는 형태였다는겁니다. 그 한계가 어디까진지는 모르겠지만 역사가 축소되었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죠. 다만 어떤 사람은 여기까지가 원상복구된 상태고 누구는 아직도 축소된 상태라고 생각하는거죠.
Marauder 17-06-01 14:06
뭐 저도 둘중에 어디있냐고 물어본다면 평양에 있다고 대답합니다만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두고있는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세상이란게 언제나 이분법적이지만은않아서 대답할땐 평양이라고 대답하더라도 의심은 항상 하고있는편이죠.
Marauder 17-06-01 14:15
원래 모든학설도 그렇지만 정상에있다고 하더라도 공격을 받지 않는것은 아니고 공격받았을때 대처를 못하면 왕위를 내려놔야죠. 뉴턴의 고전역학이 그렇게 양자역학에게 자리를 내준게 아니겠습니까? 사소한 문제점이 생기기 전까지는 다 맞아보였던 고전역학이지만 실제 문제가있었고 양자역학이 발표되었지만 정작 처음에는 대부분이 부정했습니다.
 한사군 재한반도 설은 그보다 구멍이 더 많으니 이상하게 생각할수밖에요.
흑요석 17-06-01 14:40
고려사 또는 조선시대 관찬지리서에는 평양의 연혁으로 낙랑군이 있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엔 낙랑군의 전신인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에 있었음을 거론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낙랑군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고구려 때는 북위 사람인 역도원이 고구려 사신에게 직접 질문을 한 대목이 '수경주' 기록에 남아있는데, 고구려 사신이 고구려의 도성 근처에 옛 낙랑군 조선현이 있었음을

언급한 것이 있음을 통해 낙랑군은 평양성 인근에 위치했음을 확인할 수 있지요.

한사군재한반도설이 식민사관은 개뿔,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으로 비정하던 의견들은 평양에서 유적이 발굴되기 이전에도 주류적인 지위를 가졌습니다.

특히 조선시대 국학 연구자 대다수가 이 입장을 지지했고요. 이 분들이 식민사관에 빠진 매국노들인가요????
흑요석 17-06-01 14:42
낙랑이 평양이라는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고, 다른 곳이라는 기록은 요사 등의 소수일 뿐이죠

그러면 유사학 지지자들은 이럽니다, "낙랑군이 실제로 존재하던 시기에 낙랑군이 평양이라는 사료가 있으냐"고요.

이건 무슨 예언서가 아닌 이상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내놓으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이죠.

그렇게 따지면 역시 동시기 자료로는 낙랑군이 평양에 있지 않았다는 기록도 없거든요.
Marauder 17-06-01 17:52
평양에 가짜기자묘가 생긴것은 이미 고려시대 아닌가요? 평양과 낙랑을 한 세트로 묶어 이야기하시는데 고구려 평양성이 지금의 평양과 다르다는 사람들에게는 먹히지 않는 논리인것 같습니다.
Marauder 17-06-01 17:55
계속 같은말 하게되는것 같은데... 다만 낙랑이 평양이라는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부분은 저도 궁금하군요. 여기선 맨날 그 반대이야기만 들어서요. 여기사람들은 매번 낙랑군과 낙랑국을 구분해야하는데 왜 구분해야하는지 책 문장만 던져주고 더이상 안나가시더군요.(물론 그외에 낙랑이 한번 멸망하고도 또 등장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보긴 했습니다만)
꼬마러브 17-06-01 17:02
북한에서 발굴된 낙랑유적들..북한에서는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으로 보고 계신 거 아시죠?
꼬마러브 17-06-01 17:03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말한다는 사서를 전부 들고 와보세요. 빠짐없이. 하나하나 꼼꼼히 반박해주겠습니다.

사료로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겨뤄보자고요.

애초에 겨뤄볼 가치조차 없는 낭설이지만.
꼬마러브 17-06-01 17:55
흑요석님의 댓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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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유사학 지지자들은 이럽니다, "낙랑군이 실제로 존재하던 시기에 낙랑군이 평양이라는 사료가 있으냐"고요.

이건 무슨 예언서가 아닌 이상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내놓으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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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료를 분석한다면 당연히 그 당시, 시대의 사료가 가장 가치가 높습니다. 이는 역사학의 기본 상식입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46416

낙랑군이 존재하던 시기의 사료들은 낙랑군의 위치를 요서로 가르키고 있습니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말하는 사료는.. 훨씬 후대의 것이죠. 조선시대의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낙랑의 위치를 경주라고 했죠?
촐라롱콘 17-06-01 21:41
아직도 낙랑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서북부가 아닌
요동-요서에 있었다고 주장하십니까.....!!!

위나라 명제가 바다를 건너가서 낙랑과 대방을 다시금 일시적으로 평정했는데...
만약 낙랑이 요동-요서에 위치해 있었다면 굳이 바다를 건너 평정할 필요가 있는지~~~
흑요석 17-06-01 13:24
'낙랑예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와당이 출토되었고, 한무제 때 쓰던 오수전 동전 수천 개에 이르는 목곽묘, 귀틀묘, 진실묘가 발굴되었으며

황해북도에서는 대방태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뭐 더 이상 이게 한사군재한반도설이 아니다고 유자역사학에서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 외에도 출토된 유물이 너무나도 많은데;;;;;

개인적으로 식민사관에 빠져있는 건 오히려 유사역사학 쪽 같아요.

조금만 뭐 하면 이건 식민사관이야!!해대는데 참;;

이걸 조사하고 연구하신 분들이 지금 일제 시대가 끝난지가 언젠데

뭐하러 식민사관에 빠져있겠습니까?

그 분들도 바보 멍청이가 아닐 텐데요. 한사군재요서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눈이 뜨이고 머리가 밝은 깨어있는 사람이고 재한반도설을 주장하는 주류학계는

모두 사악한 식민사학에 빠져있는 정신적 노예라는 건지 -_-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으나 무슨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가 들어서서

조선을 강압적으로 지배한 것 같은 기관이 아니라는 거죠.

정말 한사군이 한반도에 없었다면, 또는 북한이 이를 아예 이슈화시키고 싶지 않았다면

애초에 공개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냥 다 덮어버리고 은폐해버렸겠죠.

안 그래도 자기들이 제일 고결하고 한민족의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놈들인데요.

한사군이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왜 저 수많은 유물들을 보였겠습니까.
식민극복 17-06-01 14:39
대방태수묘는 조작시비가 있는 유물입니다.
http://blog.daum.net/shnaga/3712 (자세한건 여기서)

일단 수천년이 지났는데도 벽돌이 깨끗하게 발견됬다는게 있고
발견될 당시에도 도굴의 흔적과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많았습니다.

이밖에도 낙랑군유물은 너무 이상한 게 많습니다.
1. 봉니문제
(1)일제시대때 일본인들에게 발견된 수천개의 봉니는 해방이후 단하나도 발견안됨
(2)발견된 봉니에서도 조작의 흔적과 형식도 뒤죽박죽인 게 많음
(현재 주류사학계에선 일부가 조작됬다고 인정했고, 재야사학은 전부다 조작이라고 주장)
조작의흔적이 발견됬는데도 봉니를 검증된 유물이라고 쓰는게 이해가 안가죠

2.점제현신사비
-비석성분을 분석한 결과 북한지질이 아니라 요서와 요동쪽 지질로 확인됨
-역시 조작의 흔적이 발견
엄격한 재검증없이 한사군유물로 보는것 자체가 의아함

3. 낙랑고분
-북한에서 발견된 수천점의 낙랑고분은 이미 북한학계에서 낙랑군설치 수백년전에
만들어진거라고 발표함.

흑요석님께 궁금하네요.
일제가 낙랑군 유물조작을 했다는게 이미 밝혀진 사실이고, 북한에서도 직접 조사하여 밝혔는데, 실증주의 사관을 주장하시는 님께서 왜이렇게 엄격한 재검증없이 받아들이는지 궁금하군요.
꼬마러브 17-06-01 17:09
우리 조상들이 2000년동안 못찾았던 낙랑군 유물을 일본이 세키노 조사를 시작한 이후 한달만에 기다렸다는 듯이 10여개를 찾았았다는 것이 말이 될까?

설사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 하더라도 전한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 종주국인 전한이 망해버렸는데도 300여년동안 전한 이후에 세워진 4개 왕조가 본국과 멀리 떨어져있는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 상식의 문제
청천 17-06-01 10:01
역사를 축소 왜곡하여 우리조상들의 활동 무대를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밀어 넣을려는 수작입니다.
Marauder 17-06-01 10:19
유목민족의 땅은 정주민족과 조금 다른데 고구려는 반농반목임에도 불구하고 유목적인 땅은 인정하지않겠다는 의지...
식민극복 17-06-01 14:30
웃긴게 대륙백제기록은 유물이없다고 개무시하면서

몽골 깊숙히 있는 고구려성터와 산서성에서 발견된 고구려유물은 개무시했습니다.

현재 고구려,백제의 영토는 상당한 부분이 축소되있습니다.
꼬마러브 17-06-01 17:12
실증이 없는 역사는 역사가 아닙니다. 증거가 없는 주장은 그저 소설에 불과합니다. 만약, 증거를 취사선택하여 편향된 주장을 내놓는 학자가 있다면 .. 마음 같아서는 전부 사형감입니다.
촐라롱콘 17-06-01 20:46
고구려 전성기때의 강역이 직집지배지역만 하더라도
북쪽으로는 송화강유역, 서쪽으로는 요하를 넘어서 요서 일부분까지, 동쪽으로는 혼춘~연해주남단
남쪽으로는 오늘날의 충청과 영남 일부지역까지 아우르는....

어림짐작으로도 한반도의 2배 가까이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판도인데~~~

압록강 중류일대의 산골 깡촌에서 시작한 나라가 그만한 판도를 이룬 것은
실로 무일푼에서 시작하여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탄탄한 중견기업까지 자수성가한 격인데....^^

직접지배지역을 넘어 특히 송화강보다 더욱 북쪽방면의 간접지배 또는 영향권에 해당하는 지역까지
판도에 넣어봐야.... 춥고 척박한 기후에다가 인구도 희박한 당시 고구려입장에서는
소득은 거의 없고 경비만 왕창 깨지는 영양가없는 지역에 불과한지라......
꿈꾸는자 17-06-02 08:04
백제 무령왕릉은 남중국 동진양식의 무덤이죠..안에서 나온 유물중에도 그런게 포함됐구요~
그럼 당시  백제땅을 지배한것은  동진인가요ㅋㅋㅋ...
고대국가시대엔 조선시대와 다르게 외국과의 무역과 문물의 전파가 활발했던 시대입니다..쇄국정책으로 일관하던 조선왕조를 기준으로하던 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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