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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19일 (금)

[기타] 조선 기병의 주력무기 편곤

관심병자 조회 : 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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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선 이런 글이 있다.

“조총이 등장한 이후 화살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편곤이 등장하자 칼이 쓸모없어졌다."
1.jpg

편곤

기록에 의하면,
중국의 서쪽에 사는 이민족들인 서융(지금의 티베트나 위구르족 정도)이 쓰던 무기를 한족들이 수입해 쓴 것이 시초라 한다.

중국의 편곤은 타격대와 자루 간을 이어주는 쇠사슬이 길지만,
조선의 것은 위의 이미지처럼 아주 짧아서 도리깨를 생각나게 한다.

아주 초라해보는 무기지만,
이래뵈도 둔기에 해당하는 무기다.
더구나 서구권에서도 검사는 둔기 사용자 공략이 매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격력 몰빵이 저 무기를 상대로 가드를 했다간, 검이 부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대갈통 부서진다.

더구나 한국사에서 최초 대활약을 한 임진왜란 시기엔, 검을 주무기로 쓴 사무라이들에겐 그야말로 저승사자의 강림이었다.

무려 부모님 원수를 갚겠다는 명회라는 사람이 이 무기로 일본군 200명을 때려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2.jpg
칼부림에서의 이미지
이처럼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선 기병은 환도보다 편곤을 주로 휴대했다.

편곤이 둔기인 만큼, 상대가 공격을 피하면 쉽게 당하기에
이를 기동력으로 커버해주는 최고의 가성비를 지녔기 때문이다.
 
《융원필비》의 편곤(鞭棍)은 편(鞭)의 길이가 6척이고 자편(子鞭)의 길이는 1척 2촌이며 마상(馬上)에서 쓴다고 하였다.
그림에 나타난 형태를 보면 고리가 하나뿐이고 굵기가 비교적 가는 점등 대부분의 특징이 《무예도보통지》의 편곤(鞭棍)과 비슷하지만 길이가 좀 더 짧다.
임진왜란 때 명군으로 참전한 북방의 기마병이 이 편곤을 사용하여 왜군을 공격하니 왜군들이 모두 머리를 싸매고 도망쳤다고 한다.
편곤은 환도에 비해 공격 가능 거리가 훨씬 더 길고 투구로 무장한 적에 대해서 보다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게다가 칼에 비해서 익히기도 쉬웠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 널리 사용되었다.
 《만기요람》을 보면 훈련도감의 기병들은 환도와 함께 편곤을 반드시 휴대하였다.
그러나 화기의 성능이 개선되고 화력이 강화되자 기병에 의한 돌격 전법은 점차 사라지게 되고 편곤도 아울러 사라져가게 된다.  
 
 
 
쇠도리깨는 쇠를 가지고 도리깨 모양으로 만든 옛날 병장기의 하나로 유성룡 장군의 건의로 임난 때 조총으로 싸운 왜군과 육박전을 할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든 무기이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리깨질에 익숙하던 터라 따른 훈련할 필요도 없고, 제작도 간편하여 개인 병기로 널리 다루어 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쇠도리깨 (e뮤지엄, 국립중앙박물관)

그노스 17-04-26 21:46
서융의 편곤은 한나라 시대에 중국으로 전해졌고, 조선에는 임진왜란 시기에 이것이 '철련협봉'으로 불리며 전해졌는데 조선 고유의 도리깨가 접목되어 만들어진 것이 조선의 편곤이고, 보병이 쓰는 보편곤과 기병이 쓰는 마편곤으로 나뉘며, 말씀대로 조선 후기에는 기병의 주력 접전 무기로 사용되었으며 무예 과목에도 유엽전, 조총과 함께 편곤이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철련협봉'은 모편과 자편 사이에 긴 쇠사슬이 있지만, 조선의 편곤은 모편과 자편 사이에 1~2개의 쇠고리만 있어서 형태와 기능이 편곤이라기 보다는 도리깨가 맞을 것입니다.

인조 때에는 이괄이 난을 일으키며 700명의 기병대가 모두 편곤으로 무장하고 관군을 때려죽이는데 대단한 위력을 보였다고(...)

'무예도보통지'에 의하면 병자호란 때에 조선의 금군이 고양에서 만주족과 붙었는데 조선의 편곤이 약해 쉽게 부러지며 패했다고 하며 이때부터 편곤 제작에 쇠심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융원필비'에 따른 조선 후기의 군대 구성을 보면,

일단 거기보전을 구현하기 위해 화거 같은 다양한 전투용 수레가 개발되었으나, 한반도의 지형 특성상 전거가 운용될 수 있는 지역은 제한되었고, 평화가 지속되는 시대에 국가 경제에 무리를 주면서까지 대규모 전거를 운용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실제로는 군사 대부분은 조총수였고, 나머지는 위에 나온 편곤과 활로 무장한 기병과 불랑기 화포를 사용하는 포수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말기에는 기병의 돌격 전술이 거의 사라지며 편곤도 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설민석 17-04-26 22:50
서양처럼 조선은 창기병이 있었나요?
그노스 17-04-26 23:04
조선 전기 오위진법에서 기병의 구성과 역할을 보시면, 궁기병이 60프로, 창기병이 40프로였다고 합니다.
오위진법은 북방 여진족에 대비한 진법이어서 보병보다 기병의 비율이 높고 진들이 서로를 보조하며 사방을 방어하기 용이한 진법이었다고 합니다.

궁기병이 짧은 각궁으로 활을 쏴서 적진을 교란시키고, 장창을 들고 철갑옷을 입은 창기병이 돌격전을 실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혼전이 벌어지면 창기병이 보유했던 환도를 사용했다고 하지요.

말씀하시는 서양의 창기병은 아마 Lance 형식의 찌르는 창을 사용하는 기사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 시기의 조선의 창기병은 보통 자루가 2m인 베는 형식의 언월도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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