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조선 기병의 주력무기 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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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선 이런 글이 있다.
“조총이 등장한 이후 화살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편곤이 등장하자 칼이 쓸모없어졌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선 이런 글이 있다.
“조총이 등장한 이후 화살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편곤이 등장하자 칼이 쓸모없어졌다."
편곤
기록에 의하면,
중국의 서쪽에 사는 이민족들인 서융(지금의 티베트나 위구르족 정도)이 쓰던 무기를 한족들이 수입해 쓴 것이 시초라 한다.
중국의 편곤은 타격대와 자루 간을 이어주는 쇠사슬이 길지만,
조선의 것은 위의 이미지처럼 아주 짧아서 도리깨를 생각나게 한다.
아주 초라해보는 무기지만,
이래뵈도 둔기에 해당하는 무기다.
더구나 서구권에서도 검사는 둔기 사용자 공략이 매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격력 몰빵이 저 무기를 상대로 가드를 했다간, 검이 부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대갈통 부서진다.
더구나 한국사에서 최초 대활약을 한 임진왜란 시기엔, 검을 주무기로 쓴 사무라이들에겐 그야말로 저승사자의 강림이었다.
무려 부모님 원수를 갚겠다는 명회라는 사람이 이 무기로 일본군 200명을 때려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기록에 의하면,
중국의 서쪽에 사는 이민족들인 서융(지금의 티베트나 위구르족 정도)이 쓰던 무기를 한족들이 수입해 쓴 것이 시초라 한다.
중국의 편곤은 타격대와 자루 간을 이어주는 쇠사슬이 길지만,
조선의 것은 위의 이미지처럼 아주 짧아서 도리깨를 생각나게 한다.
아주 초라해보는 무기지만,
이래뵈도 둔기에 해당하는 무기다.
더구나 서구권에서도 검사는 둔기 사용자 공략이 매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격력 몰빵이 저 무기를 상대로 가드를 했다간, 검이 부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대갈통 부서진다.
더구나 한국사에서 최초 대활약을 한 임진왜란 시기엔, 검을 주무기로 쓴 사무라이들에겐 그야말로 저승사자의 강림이었다.
무려 부모님 원수를 갚겠다는 명회라는 사람이 이 무기로 일본군 200명을 때려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칼부림에서의 이미지
이처럼 임진왜란 이후부터
조선 기병은 환도보다 편곤을 주로 휴대했다.
편곤이 둔기인 만큼, 상대가 공격을 피하면 쉽게 당하기에
이를 기동력으로 커버해주는 최고의 가성비를 지녔기 때문이다.
조선 기병은 환도보다 편곤을 주로 휴대했다.
편곤이 둔기인 만큼, 상대가 공격을 피하면 쉽게 당하기에
이를 기동력으로 커버해주는 최고의 가성비를 지녔기 때문이다.
작성자 신라의 에일리언
《융원필비》의 편곤(鞭棍)은 편(鞭)의 길이가 6척이고 자편(子鞭)의 길이는 1척 2촌이며 마상(馬上)에서 쓴다고 하였다.
그림에 나타난 형태를 보면 고리가 하나뿐이고 굵기가 비교적 가는 점등 대부분의 특징이 《무예도보통지》의 편곤(鞭棍)과 비슷하지만 길이가 좀 더 짧다.
임진왜란 때 명군으로 참전한 북방의 기마병이 이 편곤을 사용하여 왜군을 공격하니 왜군들이 모두 머리를 싸매고 도망쳤다고 한다.
편곤은 환도에 비해 공격 가능 거리가 훨씬 더 길고 투구로 무장한 적에 대해서 보다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게다가 칼에 비해서 익히기도 쉬웠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 널리 사용되었다.
《만기요람》을 보면 훈련도감의 기병들은 환도와 함께 편곤을 반드시 휴대하였다.
그러나 화기의 성능이 개선되고 화력이 강화되자 기병에 의한 돌격 전법은 점차 사라지게 되고 편곤도 아울러 사라져가게 된다.
쇠도리깨는 쇠를 가지고 도리깨 모양으로 만든 옛날 병장기의 하나로 유성룡 장군의 건의로 임난 때 조총으로 싸운 왜군과 육박전을 할 때 사용하기 위해 만든 무기이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리깨질에 익숙하던 터라 따른 훈련할 필요도 없고, 제작도 간편하여 개인 병기로 널리 다루어 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쇠도리깨 (e뮤지엄,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