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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0일 (토)

[한국사] 만주족(여진족)의 선 이해

감방친구 조회 : 4,084
검색목록 목록
말갈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545423&cid=46620&categoryId=46620


읍루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540768&cid=46620&categoryId=46620

물길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095734&cid=40942&categoryId=31642

숙신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795073&cid=46620&categoryId=46620

여진족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581276&cid=46621&categoryId=46621

만주족

http://m.terms.naver.com/search.nhn?query=%EB%A7%8C%EC%A3%BC%EC%A1%B1&searchType=text&dicType=&subject=

발해인과 거란족, 여진족의 관계

http://m.blog.naver.com/gil092003/100206051422

요약

ㅡ 만주족은 우리 한국인과 혈통이 동일하나(한국인과 혈통이 동일한 종족 : 만주족, 일본 관서 및 구주인) 언어가 다름
ㅡ 정황상 고조선(청동기 시대 중후기의 요서, 요동, 만주, 한반도의 역사 형편을 편의상 고조선이라 이르겠음)의 역사 형편의 일원이었으나 분열과 쟁투기(흉노의 성장,, 동호ᆞ산융의 성장, 청동기의 고도화, 전쟁과 정치체의 고도화, 철기의 등장, 연나라의 침략 등)에 북동만주로 밀려 야인화한 우리의 옛날 겨레붙이가 바로 숙신
ㅡ 숙신이 읍루로, 읍루가 물길로
ㅡ 읍루와 물길은 부여의 지배를 받음
ㅡ 부여가 선비족과 물길의 침략, 고구려의 성장으로 멸망
ㅡ 고구려가 부여를 복속하고 물길을 제압
ㅡ 물길이 사라지고 서기후 6~7 세기에 말갈이 갑툭튀
ㅡ 말갈 가운데에 흑수말갈이 바로 숙신ᆞ읍루ᆞ물길의 후신
ㅡ 흑수말갈이 바로 여진족의 전신
ㅡ 숙신, 읍루, 물길로 불리울 때도 이후 흑수말갈,여진족으로 불리울 때도 인구는 적었고 문화는 당시 동북아에서 최야만
ㅡ 여진족(흑수말갈) 발해멸망기, 요나라 제패기에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남하

ㅡ 말갈 = 여진족(X)
ㅡ 흑수말갈 = 여진족(O)
ㅡ 나머지 말갈 = 고구려에 복속ᆞ동화된 여러 나라 및 여러 종족, 즉 고구려인이자 우리의 역사적 조상

ㅡ 발해인=고구려 유민
ㅡ 여진족은 흑수말갈의 후예로 부족사회를 하던, 당시 최후진 문화의 종족으로 발해의 피지배 종족
ㅡ 여진족 인구는 그 초기에는 겨우 몇 만 명 수준

ㅡ 여진족 성장의 계기
1. 한국(서기전후부터 한반도는 한국으로 불림)인 김함보 일가가 완안여진을 체계화 하면서
2. 발해인이 소개되면서 무주지같이 돼버린 광활한 만주에 터잡음
3. 요나라의 탄압, 고려의 북진정책
4. 송ᆞ요ᆞ고의 삼강체제
5. 결정적 계기 : 윤관의 동북면 개척

촐라롱콘 16-12-05 14:28
발해 멸망 당시에 발해인들이 요나라 내지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발해의 수도인 상경 일대를 비롯한 성읍 등의 인구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그리고 발해의 지배계층 위주에 국한되었고,

반면에 말갈족이 대다수를 이루었던 발해의 지방민들은 대부분 발해의 옛 땅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비록 원래 북만주일대가 주무대였던 훗날 금나라를 세우게 되는 완안부의 조상은
그 계통이 흑수말갈이라 할 수 있으며, 점차 중부-남부만주 방면으로 세력을 확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면에 그렇다고 타 지역의... 특히 고려시기 고려와의 접경지역인 현 함경도 일대인
갈라전 지역을 포함한 현 남만주 일대 여진족들의 원래 계통이 흑수말갈이라 하기에는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11세기 말~12세기 초 무렵에는 갈라전 일대의 여진족들도 완안부에게
복속되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발해가 멸망한 이후의 발해인의 개념이란.... 요나라에 소개된 옛 발해의
지배계층 위주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나라 시기에 옛 발해왕조 치하의 말갈족 지방민들 가운데 요나라의 직접지배를 받은
여진은 [숙여진](지역적으로는 서부만주일대 여진 ),
완안부의 경우와 같이 요나라가 직접지배하지 못하고 간접지배에 머물렀던 여진은
[생여진](지역적으로는 동북만주일대의 여진)이라 구분했습니다.

물론 대체로 생여진에 속한 제부족들은 발해왕조 시기에도 발해가 직접지배하지는 못하고
단지 발해에 예속된 수준이었던, 정치적 측면에서는 어느정도 독립적인 부족들이었습니다.
.
.
.
그리고 여진의 후신이라 할 만주족은 이전시기의 여진과 비교해서
범위와 개념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17세기 초엽인 후금~청나라 초기에 형성된 만주족의 범위에는
물론 여진족(건주,해서,동해여진 포함)이 주축이 되기는 했지만.....

이외에도 후금~청나라 초기에 복속된 만주지역의 몽골계 제부족들....
(대표적으로는 코르친부족과 시버족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시버족은
청나라 건륭제 치세당시 건륭제의 명으로 만주에서 머나먼 신강지역으로 이주하여....
결과적으로 오늘날 만주어를 보존한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집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요동 지역의 중국 한인들, 후금~청나라 초기에 귀순한 조선인들,
청나라 초기시기까지 복속된 기존 여진족의 범위를 벗어났던 흑룡강 일대의
퉁구스계 소수민족들을 모두 포괄한 개념이 [만주족]입니다.
감방친구 16-12-06 23:38
누가 그걸 모릅니까
한 소리를, 또 안 해도 될 소리를 일 삼아 하고 계시네요
제발 남의 글을 제대로 읽고 생각을 한 다음에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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