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생이닷컴-해외 네티즌 반응 커뮤니티


HOME

 - 커뮤니티>동아시아 게시판
메뉴보기
  • 해외반응 -
  • 뉴스 -
  • 영상자료 -
  • 유머/엽기 -
  • 커뮤니티 -
  • 팬빌리지 -

회원

로그인

05월 30일 (목)

[한국사] 고구려 연나라를 통치하다. 발갈지간

도배시러 조회 : 1,700
검색목록 목록
■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의 강역이 연나라(발갈지간)임을 밝힘.

二十三年 春正月王午{壬午} 帝下詔曰 高句麗小醜 迷昏不恭 崇聚勃{渤}碣之間 荐食遼濊之境 
雖復漢魏誅戮 巢穴暫傾 亂離多阻 種落還集 萃川藪於往代 播寔繁以訖{汔}今 - 삼국사(기) 영양왕

23년(서기 612) 봄 정월 임오일에 (수나라) 양제가 조서를 내려 말했다.
“고구려의 하찮은 자들이 어리석고 불손하게도 발해와 갈석(碣石) 사이에 모여 요동과 예맥의 땅을 잠식하여 왔다. 
비록 한나라와 위나라의 거듭된 침입으로 그 소굴이 잠시 허물어졌으나, 그로부터 세월이 오래 지나자 
그 족속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지난 세대에는 내와 늪의 물고기나 새처럼 조금씩 모였던 것이 
이제는 퍼지고 번식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 삼국사기 영양왕 23년(서기 612)

粵我有隋,誕膺靈命,兼三才而建極,一六合而為家。提封所漸,細柳、盤桃之外,聲教爰暨,紫舌、黃枝之域。遠至邇安,
罔不和會,功成治定,於是乎在。而高麗小醜,迷昏不恭,崇聚勃、碣之間,荐食遼、獩之境 - 수서 隋書 煬帝 下


勃、碣之間 : 발해와 갈석 사이 :  전국시대 연나라, 한나라 유주幽州 지역


●사기 화식열전 : 연나라 범위를 잘 설명한 기록 : 발갈지간 勃碣之閒
夫燕亦勃碣之閒一都會也. 南通斉、趙,東北邊胡. 上谷至遼東,地踔遠,人民希,數被冦,
大與趙、代俗相類,而民雕捍少慮,有魚塩棗栗之饒. 北鄰烏桓、夫餘,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연나라는 발해와 갈석 사이의 도회지입니다. 남으로는 제, 조와 통하고 동북 변방에는 호胡가 있습니다.
상곡에서 요동에 이르는 지역은 멀고 인민이 적어 침략을 자주 당합니다. 
풍속은 趙, 代와 비슷하고 주민은 독수리처럼 사납지만 사려깊지 못하고, 물고기, 소금, 대추, 밤이 풍족합니다.
북쪽은 오환(烏桓), 부여(夫餘)와 이웃해 있고, 동은 예맥(穢貉), 조선(朝鮮), 진번(眞番)의 이점이 있습니다.


■ (북)주서 이역 고구려
 其地,東至新羅,西渡遼水二千里,南接百濟,北鄰靺鞨千餘里。治平壤城。其城,東西六里,南臨浿水。
城內唯積倉儲器備,寇賊至日,方入固守。王則別為宅於其側,不常居之。
其外有國內城及漢城,亦別都也,復有遼東、玄菟等數十城,皆置官司,以相統攝。

그 땅은 동으로 신라에 이르고, 요수의 서쪽을 건너 2천리이며, 남으로는 백제와 접하고 북으로 1천리를 가면 말갈이 있다.
西渡遼水二千里 요수의 서쪽을 건너 2천리 : 전국시대 연나라 지역


■ 533년 북위 남영주 : 고구려 안장왕때 영주가 함락(525-528)되고서 위치를 북경 아래로 이동함.
가장 중요한것은 이때에 요동군의 위치가 북경 아래로 이동했다는것. 요동군의 위치가 바뀌면 요수의 위치도 변합니다. 
원래 이 지역에 있던 역수易水 를 요수遼水 라고 불렀던 시기입니다.

남영주 南營州〈孝昌中525-528營州陷,533永熙二年置。寄治英雄城。〉
領郡五  縣十一 戶一千八百一十三  口九千三十六 9,036명 ★

昌黎郡〈532永興中置。〉領縣三, 戶五百九  口二千六百五十八
龍城〈532-534永熙中置。〉  廣興〈永熙中置。〉  定荒〈동위539-542興和中置。〉

遼東郡 요동군〈532-534永熙中置。〉領縣二, 戶五百六十五  口二千六百三十四
太平〈永熙中置。〉  新昌〈永熙中置。〉

建德郡〈永熙中置。〉領縣二, 戶一百七十八  口八百一十四
石城〈永熙中置。〉  廣都〈興和中置。〉

營丘郡〈537天平四年置。〉領縣三, 戶五百一十二  口二千七百二十七
富平〈天平四年置。〉  永安〈元象中置。〉  帶方〈동위 538-539元象中置。〉

樂良郡 낙랑군〈537天平四年置。〉領縣一, 戶四十九  口二百三 203명
永樂〈540興和二年置。〉영락현



● 고구려 : 안장왕 519년 ~ 531년, 안원왕 531 ~ 545

2년(서기 520) 봄 정월, 양(梁)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2월, 양나라의 고조가 임금을 영동장군도독영평이주제군사고구려왕(寧東將軍都督營平二州諸軍事高句麗王)으로 봉하고, 
사신 강법성(江法盛)을 보내어 의관, 칼, 그리고 패물 등을 전하게 하였다. 
위(魏)나라의 병사가 바다에서 양나라의 사신을 붙잡아 낙양(洛陽)으로 보냈다. 
위나라에서 임금을 안동장군영호동이교위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安東將軍領護東夷校尉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책봉하였다.
가을 9월, 양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二年 春正月 遣使入梁朝貢 
二月 梁高祖封王爲寧東將軍都督營平二州諸軍事高句麗王 遣使者江法盛賜王衣冠劒佩 魏兵就海中執之 送洛陽 
魏封王爲安東將軍領護東夷校尉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 
秋九月 入梁朝貢
[네이버 지식백과] 안장왕 [安藏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A남영주.jpg
.
북위 남영주에는 진나라 만리장성을 축성 시작한 수성현이 있습니다.[통전, 역주 상곡군 수성현 秦築長城所起 ]
그리고 북위 남영주에는 낙랑군도 있습니다. [ 낙랑군 수성현 ??? ]

북위의 북위서 문제는 생략된 기록이 많다는것이죠. 하지만 사건의 경과를 통해 생략된 부분을 유추할수있습니다.


533 ~ 이후부터 수나라 전쟁전까지 전국시대 연나라지역이 고구려 강역 이었습니다.


k전국.jpg


.

감방친구 18-03-11 01:51
고생하셨네요
그런데 저는 장수왕 대에, 북연 멸망 후부터 난하까지는 고구려 영토였다고 추정합니다
그러니까 5세기 말부터
ㅡ 북위가 장수왕에게 준 발해호동이요동의 작위
ㅡ 백제로 가려던 바닷길을 고구려가 가로막고 있었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 말이죠

백제 동성왕 대에 하남성 지역에 백제, 그 사이에 북위 영토, 그리고 고구려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죠
도배시러 18-03-11 02:34
백제와 북위의 전쟁은 484년, 488년, 490년
이때 북위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후 고구려가 틈을 보다가 후려친게 아닐까 싶네요.

장수왕 이후부터 진행된 흐름으로 보입니다.
감방친구 18-03-11 01:55
598 영양왕의 수 요서 타격점이 현 조양시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도배시러님과의 공조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실 도배시러님의 역할에 제가 숟가락 얻는 격이었지만 ㅎㅎ
도배시러 18-03-11 02:37
이후의 역사는 미리 살펴주셔요. 고대사 ~ 삼국사 까지만 집중탐구 하겠습니다.
이후의 역사는 저도 숟가락만 얹고 싶다능...

목록 PC버전 위로

Copyright © gasen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