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우리말 바람과 風의 상고음
감방친구
조회 : 1,780
한 2010년 전후에 외국 사이트(영어권이었는지 중국이었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에서 중국인들이 한국어의 대부분이 고대 중국어에 뿌리를 두었다 하는 주장을 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몇 년 후에 중국 사이트에서 실제 그런 주장을 일반 대중이 아닌 중국학자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논문의 일부도 봤습니다. 우리가 순우리말이라 여기는 말들이 고대 중국어, 한자 상고음에서 비롯됐다 하는 설명이었고 그러한 예시들을 열거하고 분석한 글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風의 상고음이 우리말 '바람'과 동질하다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를 두고 오히려 우리말 '바람'이 한자어 風의 상고음에서 온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반박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순우리말로 여기고 있던 낱말들이 실제로는 한자어에서 유래하여 변음을 거쳐 순우리말 모양새를 띠게 된 사례가 없지 않기에 그 사람의 이 반박은 아주 대놓고 부당하다 하기 어렵습니다. 근거를 바탕한 순수한 의문이니까요
그런데
한자음과 한문을 중국어와 동일하게 봐서는 안 됩니다.
한자음과 한문은 어디까지나 고대 중국의 통치수단이었고, 중국은 아주 최근까지도 언문일치를 이루지 못 하였습니다. 중국공산당이 알파벳을 중국어 교육 재료로 쓰고, 중화민족을 가공하면서 비로소 21세기에 들어서야 언문이 일치되고, 언어가 통일된 지경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중국의 역사는 주로 북방 종족의 지배사입니다. 당연히 한자음은 이들에게서 온 것이죠.
고대 동북아 최초의 비교언어학 연구라 할 수 있는 전한 양웅의 《方言(방언)》에는 비록 가지 수가 적지만 몇 개의 단어를 거론하며 지금의 하북성 북부(북연)에서부터 요녕성 지역(조선)까지 말이 통한 것으로 기술하였습니다. 양웅은 기원전 1세기에 태어나 기원후 1세기 초에 죽은 사람입니다.
제가 깊게 아는 것이 없어서 흥미 위주로 쓰려 한 글이 장황해지는 것 같아서 본설로 들어가겠습니다.
_____________
風의 상고음이 우리말 '바람'과 유사하다는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90년대 초중반에 들었습니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훗날 이런 이야기를 하신 분이 국어학자이자 한학자인 진태하(陳泰夏) 교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風의 상고음은 plum으로 재구됩니다
風
[plum]
《說文解字》에는 風의 소리값은 '凡聲', 즉 凡이 맡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청나라 단옥재(段玉裁)는 그 주석서인 《說文解字注》에서 "凡古音扶音切. 風古音孚音切."이라고 적었습니다. 扶(부)의 상고음은 [pa], 또는 [ba]로 재구되고, 孚(부)는 [pʰuw]로 재구됩니다. 音의 상고음은 [qrɯm]으로 재구됩니다. 이 때문에 이를 근거하여 風의 상고음을 [prɯm], 즉 '프름/프럼', 또는 '퍼름/퍼럼'으로 재구하기도 합니다. 진태하 교수님은 '프럼', 또는 '퍼럼'으로 재구하여 설명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prɯm]
여기서 더 흥미로운 것은 《설문해자》가 風의 뜻을 '从虫', 즉 '벌레'라고 설명한 대목입니다.
風:八風也。東方曰明庶風,東南曰清明風,南方曰景風,西南曰涼風,西方曰閶闔風,西北曰不周風,北方曰廣莫風,東北曰融風。風動蟲生。故蟲八日而化。从虫凡聲。凡風之屬皆从風。
바람이 불면/일면 벌레가 생겨나는데 벌레는 여드레가 지나면 모양을 갖추게 된다(風動蟲生。故蟲八日而化。)고 하면서, 이런 까닭에 風에서 虫(蟲)이 뜻을 담당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인데 본래의 風은 본래 (인식 안됨 *)으로 그 원형이 나타나고, 갑골문에서는 鳳(봉)의 원형자와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風이 본래부터 '벌레'를 뜻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실제 '벌레'와 연관성이 있었다 한다면 우리말 '벌레<벌에'의 소리값조차 風의 상고음과 동질한 꼴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鳳
[bums]
우리말 '바람'은 〈용비어천가〉에 (인식 안됨*)으로 나타납니다. 이 소리값은 '버럼'과 '보럼'의 어중간한 발음에 가깝습니다. 사실 고대로 갈수록 모음이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모음은 어원 재구에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말 바람의 옛말(뿐만 아니라 지금 말도)과 風의 상고음을 비교해보시면 공통적으로 b/p와 r/l, m/(ŋ)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값 자체도 아주 흡사하죠.
그렇다면 우리말 바람의 어원이 한자 風의 상고음일까. 달리 말하면 바람이라는 말은 본래 우리말에 없었는데 들어온 말일까 ㅡ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 오히려 우리와 같은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던 집단의 말이 風의 소리값을 규정하면서 이 한자의 상고음과 우리말 바람의 소리값이 동질한 모습을 띠게 된 것이라고 봐야 가당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方言》에서는 하북(북연)에서 요녕성(조선)에 이르는 지역의 말이 통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중국의 고대 역사와 고고물질문화를 보면 중국의 시원과 그 지배사는 북방종족의 세상입니다.
우리말 바람은 그 동사인 '불다'와 짝을 이루는 동원어입니다. 風 또한 바람의 뜻 외에 '불다'의 뜻을 지녔습니다. 소리값도 동질하고, 의미와 쓰임도 동일한 사례입니다.
_____________
사실 뒤에 더 이어지는 내용을 처음에 구상하였는데 지나치게 막연한 글이 될 것 같아서 여기서 그칩니다.
팔구십 년대에 진태하 교수님이 중심이 돼서 한자음은 고대 우리말에서 간 것이라 하는 주장이 크게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근거로 하여 오히려 중공은 언어공정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동아게의 동반 탐문자 여러분 가운데에 10대, 또는 20대 학생분들이 계시다면 역사연구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옛날을 밝히는 국어학, 또는 '언어고고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한번 전공을 해보시는 것이 어떠실까 감히 추천합니다. 중공의 언어공정에 맞서 우리말의 역사주권을 지키는 군대로서!